꽃 트럭에서 보라색 장미를 파는 걸 보았다.빨간색, 분홍색, 주황색, 노란색, 심지어 파란색의 장미 중에도 어쩐지 보라색이 생소하게 눈에 들어왔다. 장미는 색마다 꽃말이 다르다더라. 학창 시절에는 '이별'이라는 꽃말의 노란 장미를 선물하면 헤어지자는 뜻이란 이야기를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유치해서 피식 코웃음이 나온다.
꽃말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 파란 장미는 자연적으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본디 장미는 꽃에서 파란색을 내는 색소인 델피니딘을 생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초의 푸른 장미는 원래 흰색 장미를 파란색으로 염색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슬리브 신화에서 파란 장미는 젊음을 주거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하는데, '불가능하고 가질 수 없는 소망'이 이어진 듯하다.
지금의 파란 장미는 인간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유전공학으로 델피니딘이 많은 장미 품종을 개발할 수 있었고, 그래서 파란 장미의 꽃말은 '기적', '불가능의 극복', '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바뀌었다. '기적'이라던 파란 장미는 이제 꽤나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어디에나 있는 기적은 더 이상 신기하기 않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다소 일방적이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라색 장미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영원한 사랑, 불완전한 사랑. '영원'과 '불완전'이 하나의 꽃에 들어있는 것이 이질적이고 기묘하다. 영원하고 불완전한, 영원하거나 불완전한, 영원하지만 불완전한, 영원해서 불완전한, 어쩌면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그런 사랑. 순수하게 영원한 사랑이라고 했다면 꿈꾸는 듯 예쁘기만 한 소리라 했을 텐데, '불완전함'이라는 현실성 덕분에 영원할 리 없는 '영원'도 납득이 된다. 내가 믿었던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사랑이 뭘까 생각하던 중에 보라색 장미를 보았다. 어쩌면 영원히 불완전한 것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영원하지 않고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 사랑이려나.
완벽해야 할 것 같아서 아무것도 못하겠다던 친구 K에게 보랏빛 장미를 선물해야겠다. 우리는 영원히 불완전한 그대로 완벽해. 무엇도 완벽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대로 완전해. 장미가 붉던, 푸르던 상관없이 아름답고 향기롭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