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담 홍차와 9, 10월 한정 디저트인 무화과 파르페를 주문했다. 종종 그렇듯 '○○ 한정'에 한 없이 약해져서 시그니처 디저트는 먹어보지 못했다. '한정 메뉴'에 조급함을 느끼고 '시그니처 메뉴'에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마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Good-bye 대신에 See you soon이라고 손 흔들 수 있는 그런 믿음.
대만 홍차 중 '일월담'은 처음이었는데개인적 취향으로는 가장 유명한 '동방미인'보다 좋았다.붉은 수색에 과실 향 짙은 부드러운 단맛이 가득이다. 떫고 쓴 맛이 조금도 없이 어여쁜 맛. 낮에는 해의 축복을, 밤에는 달의 보살핌을 받으며 고생 따위는 모르고 귀한 대접만 받아온 공주마마 같달까.
무화과 파르페와 페어링도 좋았다. 파르페는무화과를 가장 가치 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듯했다. 라즈베리 잼 위에 꾸덕한 밤 크림으로 덮은 후무화과를 올려 피스타치오 바법가루처럼 뿌리는 거다. 보물을 땅 속에 묻고 돌을 하나 얹어 표시를 하듯이, 무화과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마일스톤이 된다.
그냥 딱 요새 나에게 필요했던 다과였다. 그렇게 구김 없는 실크 같은 차와 보석상자 같은 디저트. 나도 그런 귀함을 먹어 귀해지는 기분이라 행복했다. 그런 순간이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닌 순간이다.
그 순간이 스쳐 지나가는 시간, 그 어떤 행복에 대하여. 적어보고 싶어졌다. 지나가는 행복을 붙잡아 글로 박제해둘 수 있다면, 적어도 내가 힘들 때 가이드라인이 되어주지 않을까.
늘 행복하기만 한것이라니라, 행복할만한 조건이 되어서가 아니라 이작고 짧은 순간들을 어여쁘게 엮어서 행복한 삶이 되는 거겠지. 그렇다면 불행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되도록 줍지 말고 행복의 순간들만 잘 골라서 주머니에 넣어야겠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보지 않고 굴려도, 도륵도르륵, 행복한 소리가 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