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D 씨는,정말 미안하지만 짜증 나는 스타일이었다.요새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네요, 라며 가볍게 말을 꺼내면 냉큼 받아서 자기 얘기를 쉼 없이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음, 말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신가 보다.' 라며 넘길 수 있었는데,어떤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말하는 분이 있으면 '와, 가방끈 길 거 같은 스타일~' 이라면서 비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추임새를 넣는 건 듣기에 꽤 불쾌했다.
비아냥대는 게 아니었다 해도, D 씨는 원체 훈수두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아주 좋게 말해 '훈수'이지, 내 기준에는 선을 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를테면, 일기 쓰는 습관을 가져보려 한다는 분에게, 글을 쓰는 방법을 배워본 적은 있냐, 배우지도 않고 혼자 쓰는 글은 발전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면서 피드백을 받아야 하고, 내 지인이 에세이 글쓰기 강연도 하고 책도 많이 쓰신 분인데 그분이 쓴 책을 추천해줄 테니 그걸로 공부해라, 에세이로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지인을 소개해주겠노라는 이야기를 줄줄줄 늘어놓는 식이었다.
어떤 대화 주제가 나오든지 D 씨의 긴 연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심 가지고 듣던 사람들도 나중엔 딴 곳을 보며 영혼 없는 끄덕임만 할 뿐이었다. 나는 솔직히 D 씨가 무례하다고 느껴져서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아, 네 그러시군요, 정도로 대충 반응하는 걸로 대화를 끊고는 했다. 유일하게 D 씨에게 귀를 기울이는 건 A 씨뿐이었다. A 씨가 장황한이야기도 정성껏 듣고, 적당한 질문까지 더해가며 경청해주니, 당연히 D 씨는 신이 나서 더 많이 떠들었고, 나는 진심으로 A 씨의 인내심에 감탄했다. 모임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하면서 슬쩍 A 씨에게 얘기를 건넸다.
"끝까지 경청하고 질문을 이어가시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많이 배우고 가요."
줄곧 미소를 잃지 않던 A 씨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면 돼요. 우선 나를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겠지만요."
집에 돌아오면서 '자애'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자애로운 마음'의 핵심은 타인에게 베푸는 자애(慈愛)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애(自愛)일까. A 씨가 했던 말을 되뇌다 보니 '스스로를 사랑하듯 타자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자애'라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확실히 자신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면서 감히 타인을 존중한다는 건 모순일 거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도 없으면서 물을 끓이겠다는 것만큼이나 불가하고, 운전 방법도 모르면서 운전대를 잡는 것만큼이나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 나에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 듯, 타인의 단점이 먼저 보이더라도 그 또한 귀한 존재이거늘, 나는 또 마음속으로 D 씨를 비난을 하고 짜증 난다 평가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를 질책하는 그 습관 그대로.
다른 사람의 싫은 모습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이라는 말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D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살을 찌푸렸었지만, 돌아서서 생각하니 남의 단점은 곧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사실은 나 스스로가 싫은 마음을 외면하고, D 씨를 비하하는 치졸한 방식으로 그보다는 내가 낫다는 우월감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걸까. 나의 마음의 그릇이 이렇게까지 볼품없었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서 숙연해졌다.
귀 기울이지 않았던 D 씨의 많은 이야기들 중에, 모임에 나온 이유가 고독사가 두려워서 라던 말이 기억이 났다. D 씨는 그저 외로웠던 거다.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고 누군가가 들어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그렇게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말을 하고 또 했던 거구나. 이 시간, 이 장소가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이렇게 글을 써서 발행하는 것처럼. 누구라도 나의 일상을 목격해주기를, 나의 생각을 들어주기를,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릴 것 같아서.
이토록 외로운 존재들. 나를 떠올리듯이 D 씨를 회상하니 그 또한 애처롭다. 외로움이 그의 무례를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안에도 있는 종류의 외로움을 타인에게서 찾고 나면 차마 비난할 수 없게 된다. 내가 A 씨처럼 타인의 간절함을 이해하고 들어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어려운 위로도 필요 없이 그저 따듯하게 들어주기만 했어도 D 씨는 그 하루 동안엔 조금 덜 고독했을 것이다. 혹시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D씨도, 나도, 타인을 조금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자애롭고 성숙한 인간이 되어 있길. 그리하여 모든 존재가 비로소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