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생각지도 않았던 100일이라는 말에 놀라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9월 말의 어느 모임이었다. 9월이 거의 끝나간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한 해가 또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고는 인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살고 있었구나. 어떤 분은 손뼉을 치며 100일 챌린지를 시작하기 딱 좋은 때라고 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가을부터 내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대요. 1월 1일이 된다고 내가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행동이 습관이 되려면 일반적으로 3개월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년에 뭔가를 목표해서 이루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서 100일 챌린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근래에 여러 일들로 심신이 지쳐 있던 나는 '도전'이라는 단어에도 곧장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올 해가 100일 남았다'는 얘기가 한참 머릿속을 맴돌았다.
100일이라는 건 누가 제일 먼저 기념하기 시작했을까? 아기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면 잔치를 하는 것이야 옛날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아서였다고 해도, 왜 연인들은 100일을 기념하고, 왜 단군 신화 속 호랑이와 곰은 하필 100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어야 했을까. 그러고 보면 '100'은 늘 완벽한 수로 취급받는다. 100점, 100%에 미치지 못하면 부족한 것이고 100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 마냥 다들 100을 향해서 간다. 12월 31일의 사람이 1월 1일이 된다고 갑자기 새 사람이 되지 않는 것처럼, 100은 그냥 99와 101 사이의 자연수일 뿐인데 유독 사람을 민감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100이라는 숫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 숫자가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먹을 기회를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대단한 도전은 아니지만 2022년 한 해를 정성껏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봤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동안 사건, 사고가 많았아서 유난히 몰아치는 듯한 9개월을 보냈다. 가을은 뭔가를 내려놓기에 참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한다. 좀 버려도 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인가. 나보다 훨씬 큰 나무들을 보고 있자면, 나무들은 수만 장의 잎사귀들을 남김없이 내려놓는데, 내가 내려놓지 않을 이유가 있나 싶다. 나무는 봄이 오면 비어버린 가지에 새 잎이 돋아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두려움도 없이 여름 내내 무성히 키워낸 잎들을 미련 없이 떨구어 버린다. 나도 그런 믿음으로 한 해를 정리해야겠다. 강렬했던 나쁜 기억은 버리고 그 자리에 소소하지만 좋은 기억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