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차 : 여기는 빈
CAMERA : Rollei Prego90
FILM : Kodak Colorplus 200
이쯤 되면 시차 적응이 될 만도 한데 아직도 적응을 못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벨베데레 궁전에 가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클림트의 그림을 실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벨베데레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고 구글맵이 알려주길래 시간도 많으니 걷기로 했다. 날씨가 좀 춥긴 했지만 GDP 5만 불의 나라는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느끼며 걸었다. (별반 다른 건 없었다.)
벨베데레에 왔는데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미술관 오픈 시간을 검색해보지 않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오픈을 늦게 하면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면서 검색을 해보니 30분 정도 뒤에 연다고 하더라.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려고 서 있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으로 구입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발견했다. 줄 서 있기 귀찮으니 인터넷으로 급하게 티켓 예매를 했다. 그리고 첫 타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벨베데레가 생각보다 엄청 컸다. 어디부터 봐볼까 고민을 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가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갔다. 중세시대 그림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이 곳에 사람들이 왜 없나 생각해보니 클림트 작품이 없고 잘 모르는 작가들의 작품이 있어서 그런가 싶더라. 그래서 나도 클림트 작품을 만나러 가본다.
클림트의 <키스>가 가장 유명한 작품이지만 나는 <유디트>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유디트>를 엄청 기대하고 왔는데 왜 <키스>가 클림트의 대표작인지 알 것 같았다. 미술은 잘 모르지만 <키스>가 주는 중압감 같은 것을 받았다. 확실히 인터넷이나 사진으로 보는 건 실제로 보는 것을 반의 반도 담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운이 좋게 첫 타임으로 들어와서 사람이 없을 때 <키스>와 사진도 찍었다. 무계획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가끔 얻어걸릴(?) 때가 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인지 기쁨이 두 배로 온다.
벨베데레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모네의 <지베르니의 정원>을 꼽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재주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음 그냥 자꾸만 눈이 가는 작품이다. 다양한 색을 조화롭게 잘 썼다.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 있지 싶더라.
이 그림은 3층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키스>가 있는 2층에만 있고 3층까지는 잘 안 올라오더라. 덕분에 그림 앞에서 혼자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람이 안 지나다는 건 좋지만 한편으로는 작품이랑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찍어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참을 작품을 보다가 겨우 지나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림과 함께 찍어달라고 했다. 이렇게 멋진 작품과 사진을 남길 수 있다니 영광이다.
벨베데레에서 좋은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보지 못해던 에곤 실레의 작품도 보고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느꼈다. 하루를 꼬박 여기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기엔 배가 너무 고팠기에 밥을 먹으러 이동하기로 했다.
벨베데레 상궁에서 하궁으로 걸어가면서 꽃이 피는 계절에 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겨울이다 보니 정원의 풀들이 없어서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열심히 돈 벌어서 꽃 피는 계절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 그때는 벨베데레 하궁에 있는 전시도 봐야겠다.
밥 먹으러 이동하는 길에 어느 공원에 들리게 되었다. 놀이터에는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이 가득했고 호수 주변에는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많았다. 참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는 공원이 많이 없어졌고 있다고 해도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공원에 모여서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니 언젠가 칼럼에서 읽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서울에는 돈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 없다고. 그래서 갈등이 많은 것이라고.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공원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GDP 5천 불인 나라이지만 이들의 여유는 그것이 아닌 대화와 소통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을 뒤로한 채 걷다 보니 시장 같은 곳이 나왔다. 거리에 생기가 넘쳤다. 들어가보고 싶은 서점도 있었다. 친구는 빈이 노잼의 도시라고 했지만 나는 여기 골목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었다. 적당히 깨끗하고 적당히 정돈되어 있고 적당히 옛스러운 느낌이랄까.
밥을 먹고 나와서 걷다 보니 관광지 주변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미술 작품도 보고 이것저것 한 것이 많아 곧 해가 지지 않을까 싶어서 시계를 봤더니 1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여기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인 게 아닐까. 할게 딱히 없어서 일단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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