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사는 주력 제품이 전통적으로는 나의 분야와 직접 맞닿아 있지는 않았는데, 최근 기사를 통해서 사업 분야를 나의 관심 분야와 비슷한 방향으로 확장한다는 것이 알려지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SNS를 통해 현직자에게 연락을 해보니, 나와 관련 있는 직무도 최근 채용을 하려는 분위기라고 했다. 9월 초부터 수시로 해당 기업의 채용 공고를 확인하다가, 9월 말 정도 마침 관심 있는 포지션의 채용 공고가 열려서 서류를 지원했다.
상시 채용이다 보니, S사나 H사 공채에서 요구하는 줄글 형태의 에세이는 작성하지 않아도 되었다. 단지 나의 프로젝트를 요약하는 포트폴리오 PPT, 그리고 CV (Curriculum Vitae, 학계 또는 회사에 제출할 용도로 작성하는 이력서. 자유 양식이긴 하나, 널리 쓰이는 양식은 다소 정형화되어 있다)만 제출하면 되었다. CV는 평소에 작성해둔 것을 기반으로 하여 L사의 지원 포지션에 알맞게 조금만 고치고, 포트폴리오 PPT에는 학위 과정을 거치며 수행한 프로젝트들을 각각 2~3 슬라이드 분량으로 작성해 넣었다.
그리고 약 2주 뒤에 메일이 왔다.
'서류 합격입니다. 온라인 코딩 테스트를 제한 시간 내에 응시해주세요. 인터넷 검색이나 생성형 AI 툴은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N사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온라인 코딩 테스트를 요구했다. 생성형 AI의 답변 성능이 나날이 올라가는 요즘, 별다른 감시 도구 없이 지원자의 양심에 의존하는 코딩 테스트라니. 카메라 촬영, 화면 벗어남 방지 등의 도구 없이 문구 하나로 지원자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약간은 의아했다. 면접이 3번이나 있는 만큼, 부정 행위를 하더라도 어차피 면접을 통해 사후 검증이 가능하다고 보고, 코딩 테스트는 다소 형식적인 절차로서 운영하는 듯했다.
응시를 앞두고 며칠 동안은 온라인 코딩 연습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문제들을 몇 개씩 풀면서 코딩에 대한 감을 유지했다. 마감 하루 전, 공유받은 링크를 클릭하여 문제를 풀이하였다. 예상 가능한 유형의 문제들은 모두 잘 풀었는데, 처음 보는 유형의 문제들도 있었다. 하나는 아예 개념 자체가 낯선 문제였는데, 언뜻 보았을 때 이런 문제는 특히 생성형 AI 툴을 쓴다면 쉽게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괜히 양심을 어겼다가 예상치 못한 불이익에 직면할 수도 있고, 면접 때 유사한 개념을 물어봤을 때 답을 못하는 상황이 오면 괜히 곤란할 것 같아, 깔끔하게 못 푼 채로 제출했다. 답안 제출한 지 일주일이 안 되어 결과를 안내하는 연락이 왔다.
'코딩 테스트 합격입니다. 1차 면접은 비대면으로 진행되며, 현직 엔지니어들이 참석합니다. 본인이 수행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30분 정도의 발표를 구성해주세요. Q&A까지 약 1시간 정도 예상하시면 됩니다.'
온라인 코딩 테스트는 다소 형식적인 절차인 듯했다. 한 문제는 아예 빈칸으로 뒀는데도 합격을 하였다. 면접은 처음인 만큼, 발표 자료도 시간을 써서 준비하고, 어떻게 내용을 말할지도 시간을 재며 연습했다. 비슷한 분야를 전공하는 친구 L.J에게 발표 자료를 공유하며 전달이 잘 될 것 같은지를 물었다.
"자료는 깔끔해. 슬라이드만 봐도 각 프로젝트의 핵심 내용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아. 내용 면에서는 충분한 것 같고, 여기서 너의 강점을 더 어필하면 좋을 것 같아. 아니면 회사에 대한 내용을 좀 찾아보고 그런 내용을 어필해도 좋을 것 같고. 나라면 이 직무와 연관된 L사의 제품을 더 자세히 알아볼 것 같아. L사가 최근 온라인에 ~~ 서비스를 공개했던데, 이걸 한번 써보는 건 어때?"
스스로 발표 연습도 여러 번 진행하고, 마침내 첫 면접을 응시하였다. 처음 2~3분 정도는 긴장을 했지만, 이후에는 입이 풀리며 크게 떨지 않고 준비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다. 관련 부서의 현직자들이 참석한 만큼, 기술적인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내가 수행한 연구들이 실제로 L사 서비스에 사용될 수 있을지를 물어보는 질문들도 많았다.
"박사 학위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요?"
"네,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 산업계에서 조금 더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와 가까운 일을 하는 것으로 저의 커리어를 이어 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포지션의 경우, 연구의 성격은 거의 없고, 개발 위주일 거에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네, 앞으로 회사에서 커리어를 이어 나갈 생각이기에, 개발 역량을 길러나가고 싶습니다."
채용 공고만 보았을 때는 연구와 개발의 성격이 모두 적절히 혼재되어 있는 직무인 것 같았는데, 면접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발 위주의 포지션을 채용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연구 개발의 성격이 모두 있는 포지션으로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았지만, L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가 나름 흥미로운 지점은 있는 것 같아서 이 기회에 나의 개발 역량을 중점적으로 기르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면접 결과를 안내해주었다.
'불합격입니다.'
N사 불합격과 비교하였을 때는 아쉬움이 더 크게 들었다. 서류 불합격은 본격적인 채용 절차를 아직 진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어서, 응시했던 전형을 되돌아보며 아쉬움이 남을 일은 없었다. 단지 '불합격'이라는 문구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본능적인 실망감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면접을 진행하게 되면, 면접관이자 해당 기업의 현직자와 대화를 하게 되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이미지와 기억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남게 된다. 내가 이 회사에 가서 일을 하는 모습도 조금이나마 그려보기 때문에, 불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의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온 것이다.
N사 불합격의 경우, 석사 신입은 경력 채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결과였다. 하지만, L사의 경우 어떤 이유에서 불합격을 한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이성적으로는 부족한 면에 대해 스스로 피드백을 해서 이후에 있을 타사의 면접에서 보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감정적으로는 단순하게 나를 왜 거절했을까 궁금했다. 최소한 나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부모님에게도 소식을 공유했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아버지가 위로를 해 주셨다.
"불합격에 대한 이유를 너무 찾으려고 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네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 수 있어. 다른 선택지들도 아직 남아 있으니, 이번 것은 잊고 다음 선택지에서 또 열심히 해보면 되지. 아빠 생각엔 말야, 합격자에 대한 이유는 무조건 있을 거야. 회사가 아무 사람이나 뽑고 월급을 줄 이유는 없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반대로 불합격에 대한 이유는 없을 수도 있어. 특히나 이런 상시 채용은 그냥 지금 안 뽑고, 조금 나중에 뽑고 싶을 수도 있는 거지. 아니면 마침 운이 나쁘게 더 실력이 좋은 사람이 같은 공고에 지원했다거나."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채용 지원자의 입장으로서 나는 답답했고, 이걸 잊어버리고 다른 기업들의 채용 전형에 다시 집중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연구를 하고 있는 분야의 시장이 앞으로 커질 수 있다는 예상들이 나오면서, 국내에도 관련 스타트업들이 여럿 등장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중 R사, F사는 국내 시장 확보에 있어 앞서 나가며, 이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타진 중인 상황이었다. 아직 대규모 매출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목표로 하는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그 기대감에 누적 투자 금액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었다.
R사의 경우, 현직자와 학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인턴으로 일했던 학교 지인에게도 이야기를 들으며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F사의 경우도, C레벨의 강연을 몇 번 찾아가서 듣고, 현직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들으며 일하기에 괜찮은 회사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의 높은 금전적 보상에 큰 뜻을 두고 있지는 않은데, 실제로 두 회사는 이미 어느 정도 초기 성장을 이룬 회사라서 큰 금전적 보상을 바라고 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보다는 내가 연구를 하고 있는 분야와 가장 밀접한 기업이다 보니, 기술적 호기심 측면이 앞섰다. 그리고 기대할 수 있는 금전적 보상의 상한이 조금 낮은 대신 안정성의 하한은 조금 더 높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다른 초창기 기업들에 비해서는 R사와 F사를 높은 우선 순위로 생각하게 되었다.
R사에 서류를 접수하였고, 상시 채용이다 보니 줄글 형태의 에세이 없이 프로젝트 내용이 담긴 PPT와 CV만을 제출하였다. L사 서류 접수 때 만들어놓은 자료를 기본으로 하여 조금만 수정을 하면 되어서, 크게 시간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만 하루가 안 되어 연락이 왔다.
'이력서를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서류 합격입니다. 다만 원래 지원하신 A 포지션 외에 B 포지션도 관심이 있으신지 문의드립니다.'
우선 채용 절차가 아주 신속하게 진행된다는 것이 신선했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불합격을 하더라도 빠르게 진행되는 게 좋으니, 내게는 긍정적인 요소였다. 처음에는 만 하루 만에 서류를 검토한 것이면, 메일에 쓰인 대로 "신중하게" 본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핏이 더 맞을 수 있는 B 포지션까지 언급하며 이후 전형을 제안해준 것을 보면, 이력서를 보고 신속하지만 신중하게 검토를 하고 연락을 준 것 같았다.
'네, 진행 의사가 있습니다.'
나는 바로 메일에 회신하였다. R사는 다음 전형으로서 비대면 면접을 진행하게 될 것임을 안내해주었고, 후보 시간대 중 편한 시간대를 하나 선택하여 면접을 보기로 하였다.
F사도 전반적으로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연락이 1주일 조금 넘게 지나서 온 것이 차이점이었는데, R사가 워낙 신속하게 연락을 주었다 보니 상대적으로 느리게 느껴졌다. (물론 S사는 코딩 테스트 결과만 1달 넘게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속도는 빠른 편에 속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채용 절차와 관련된 여러 중요한 정보들을 HR (Human resource의 약자로, 회사 내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말함.) 담당자가 직접 전화로 알려준다는 점이다.
"S.H님, 안녕하세요, 저희가 서류 검토한 결과 당초 지원해주신 C팀에서 비대면 면접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다만, D팀에서도 서류를 보고 관심을 표했습니다. 혹시 D팀도 관심 있으신가요?"
"네, 감사합니다. D팀도 관심이 있었는데, 자격 요건을 읽어보며 더 어필이 될 만한 포지션을 하나만 선택해서 서류를 접수하다 보니 C팀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네, 그러면 혹시 어느 팀에 더 관심 있으실까요?"
"음.. 지금으로서는 비슷하게 관심이 있습니다."
채용 공고 상으로는 C팀, D팀에서 하는 일이 조금 다른 것은 알겠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F사에서 서로 다른 팀으로 분리될 만큼 서로 구분되는 일을 하는지는 조금 모호했다. 그래서 우선은 둘 다 관심 있다고 했다.
"네, 그러면 두 팀 모두와 비대면 면접 진행해도 괜찮으실까요?"
"네, 감사합니다."
채용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처음 지원한 포지션 외에도 회사 측에서 서류 검토 후 자체적으로 지원자와 더 잘 맞을 만한 포지션으로 다시 매칭을 해준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이러한 점들이 내게는 긍정적인 요소로 느껴졌다. 그렇게 11월 초에 R사, F사와 모두 비대면 면접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S사: 총 3차 전형 중 2차 코딩 테스트 응시 완료
H사: 총 3차 전형 중 2차 인적성 및 비대면 면접 응시 완료
L사: 총 5차 전형 중 3차 비대면 PT 면접 불합격 (채용 절차 종료..)
R사: 총 4차 전형 중 1차 서류 합격
F사: 총 3차 전형 중 1차 서류 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