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by 명쓰

9. 국민연금공단


2025년 상반기 국민연금공단 채용공고를 보았다. 전체 신입직원 채용은 160명 정도의 규모였지만, 내가 지원하려 한 권역 채용으로는 단 3명만이 최종합격할 수 있었다. 역시나 서류전형-필기전형-면접전형을 모두 통과해야만 했고, 바늘구멍이라는 말이 여기에 딱 맞는 표현인 거 같다.



나는 한국농어촌공사를 퇴사하고 국민연금공단을 마지막으로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나 스스로도 이제는 공부할 수 있는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꼈고, 국민연금공단은 대학생 때부터의 목표이기도 했기에 국민연금공단에 입사지원을 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께서는 "너는 이제 나이도 30대 중반이고, 예전에는 운이 좋았지만 지금 날고 기는 취업준비생들과 경쟁해서 3명 안에 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라고 단언하셨다.



이러한 부모님과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나에게 큰 오기를 불러일으켰고, 나는 부모님과 주변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게."




이후 나는 공부에 미친 사람이 되어 생활하기 시작했다. 수면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 길게 자면 2시간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공부에 올인했다. 잠을 잘 때에도 그날 공부했던 인강을 틀어놓고 잠에 들었다. 자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복습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공부 이외에 내가 특별히 해야 할 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커트라인을 훨씬 뛰어넘어 필기전형에 합격했다.


연금 필합.png 필기전형 결과를 확인하고 기쁘기보다는 최종면접에 대한 부담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6월 초로 면접일정이 정해졌고, 내 대한적십자사 동기였던 C는 당시 몸이 좋지 않던 상황에서도 면접준비를 계속 도와주었다. PT면접, 토의면접, 상황면접, 인성면접을 하루에 동시에 보게 되는 쉽지 않은 면접이었지만, 나는 웃음기를 빼고 오로지 면접준비에만 올인했다.



그리고 KTX를 타고 공단본부에서 면접을 보고 나온 후 내 느낌은 "잘 모르겠다."였다. C가 면접이 끝나면 바로 전화를 달라고 했기에 나는 C와 통화하며 이런 질문들이 나왔고,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C는 "오빠, 이제 걱정 다 내려놓고 발표 전까지 여행이나 다녀와. 오빠는 무조건 될 거야"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나를 다독였다.



그래도 나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고, 6월 20일 최종합격자 발표 전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운전대를 잡고 외할머니가 계신 경북 안동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외가댁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외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셔서 사촌동생에게 미리 연락해서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고, 사촌동생은 고맙게도 내가 머무는 동안 자신의 방을 양보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외할머니는 동생의 방에서 눈을 비비며 나오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깜짝 놀라시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반응을 보이셨다. 외가댁으로 목적지를 정한 이유는 내가 평소 가장 자주 연락드리는 분이면서 동시에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 외할머니였기 때문이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핸드폰을 잃어버리시고 새로 번호를 등록할 때에도 나를 단축번호 1번으로 해달라고 하실 정도로 나를 극진히 아끼시는 분이다. 그렇게 외할머니, 외숙모, 사촌동생들과 함께 보름 정도 외가댁에서 머물게 되었고, 최종합격자 발표날인 6월 20일에는 어머니, 이모, 이모부까지 오셔서 대가족이 둘러앉아 나의 국민연금공단 최종합격자 발표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5년 6월 20일 오후 3시. 노트북에 비친 화면을 보고 우리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연금 최합.png 최종합격을 확인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스며들어왔다.



나는 그렇게 내 9번째이자 마지막 공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연수원에서 2주 동안의 신입직원 교육을 마치고 나는 경기도 이천여주지사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본가에서는 출퇴근이 불가능한 거리였기에 나는 이미 발품을 팔아 방을 구해놓은 상황이었다. 방도 나름 신축 오피스텔이었고, 모든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무모한 도전에 성공하여 자부심에 도취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의 생활은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연금공단은 부정할 수 없는 좋은 직장이다. 특히나 워라밸 부분에서 취업준비생들이나 현직자들에게 큰 메리트로 다가오기도 하고, 전체적인 기관 분위기가 좋은 공단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운이 좋지 않았다. 지사 내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해당 사건들은 공단 본부의 관련 담당자분들을 비롯한 전문가분들과 만난 후, 내 건강을 고려해서 종결하기로 결정하였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지 않은 일들을 겪게 되어, 얼굴도 모르는 전국의 많은 공단 직원분들이 메신저, 메일, 전화까지 주시며 격려의 응원을 보내주시곤 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C는 나를 챙기기 위해 자신의 동기들,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업무적으로는 물론이고, 내가 현실에서 잘 이겨나갈 수 있게 네트워크를 형성해 주었다. 최근까지도 공단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셨던 분들과 연락도 이어가고 있고, 찾아뵙기도 하며 퇴사 후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내 체력과 정신력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전화 업무를 할 수가 없었고, 출근하여 자리에 앉았는데 분명 앉아있지만 앞에 있는 모니터가 인지가 되지 않았다.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섭취하는 밥, 죽, 심지어 물까지 모든 음식물을 매일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구토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금요일 퇴근 이후 월요일 새벽까지 나는 3일 동안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홀로 의식을 잃고 있었으며,





죽는다는 느낌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당시 겉으로 보이는 몸무게로는 입사 전 68kg 에서 56kg까지 줄어있었다. 참고로 내 키는 174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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