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된게 ‘인간’이라면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봤자 제게 무슨 이득이 있었을까요?”
사냥꾼들에게 잡힌 원숭이는 탈출을 포기한다. 탈출해봤자 인간에게 다시 잡힐 것이고 인간을 피하더라도 같이 잡힌 뱀들에게 잡아 먹힐 것이고 이 모든 것들을 피해 선박 밖으로 나오더라도 바다에 빠져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숭이는 진정한 탈출, 자유보다는 현재의 우리 안의 삶, 구속 된 삶에서만이라도 벗어나길 희망한다.
“다만 출구가 필요했기에 흉내 냈을 뿐이고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지요. .... 저는 유럽인들의 평균 교양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서커스단의 원숭이가 되기위해 술을 먹어야했고 인간의 언어를 배워야했고 채찍에 맞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이겨내고 노력하여 우리 안에서 벗어났다. 동물원의 원숭이보다 나은 서커스단의 원숭이가 된 것이다. 자신 스스로 유럽인의 교양 수준에 도달했다고까지 선언한다. 진정한 자유를 얻지는 못했고 다만 ‘출구’를 통해 이전의 갇혀있던 삶에서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했다. 인간세계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적응한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원숭이의 모습에서 2030들의 모습을 봤다. 대입, 취업, 이직, 결혼 등 사회적 요구들이 어린 그들을 압박하고 구속한다. 남들이 납득하는 적당한 직업을 얻고 적당히 남들만큼 놀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따라 살아가면서 어릴 때 압박 받았던 삶보다 나아졌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진정 즐기는 것들에 다가갈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마음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평균’적인 삶에 도달했노라고 만족하며 안도한다.
우리도 원숭이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는 책에서 언급한대로 너무 ‘숭고’하게 느껴서 생각할 엄두조차 못내고 다만 지금의 상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싶은 출구만을 찾는다. 하지만 이 출구는 이전 상황에서 결핍된 것을 조금 만족시켜줄뿐 ‘자유’는 아니다. 다른 형식으로 구속된 삶일뿐이다.
투자의 대가들이 말하길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이 가는 방향으로 가지말되 무조건 반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대다수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독립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삶을 꾸려 나가는데도 이러한 ‘독립적 사고’를 얼마나 잘 지키고 유지해나가는지가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 생각, 가치관에만 머물러있으면 거기에 맞게 살아가려고하고, 의지하고, 만족하기 때문에 늘 어딘가 결핍된 삶으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은 남들과 떨어져서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의 가치관을 흔들리지 않고 유지한다면 내가 정한 기준들로 내 삶을 체크하기 때문에 다른 것 눈치 볼 필요없이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채찍을 맞아가며 술을 들이 부어가며 서커스를 해가며 된게 나를 조련한 사람 수준이라면, ‘인간’이라면 그보다 더한 치욕이 있을까.
출구에, 목표에 만족하는 삶을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