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대지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자
"언제까지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 종이나 씹으면서 있겠다는 것인가?"
주인공은 친구와의 이별을 상기한다. 그리스인들을 구하러 직접 같이 가자는 친구의 요청을 거절한다. 인간 세상에서 벗어나 욕망을, 속세를 비우고 해탈로 나아가는 붓다의 삶을 동경한다.
그런 그의 앞에 조르바가 우뚝 등장한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나를 비우고, 욕망을 거세하고 체면을 차리고 글을 쓰며 관조적으로 삶을 대했던 주인공은 '자연인' 조르바를 만나 점점 그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조르바는 흥겨울 때 언제나 춤을 춘다. 주인공은 같이 춤을 추자는 조르바의 제안을 거절한다. 주인공은 늘 조르바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이유를 묻고 조르바는 대답하기를 어려워하고 주인공의 집요한 질문을 답답해한다. 터져나오는 열정, 사랑, 기쁨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그 즉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르바는 늘 산투르를 연주하고 춤을 췄고 그에 반해 감정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과 떨어져서 살려고 노력했던 주인공은 춤추기를 거부한것이(정확하게 말하자면 춤 출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몸을 굽혀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중략)...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주인공은 조르바와 함께 살면서 삶이라는 것,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자연'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본인이 공부했던 것, 글 쓴 것, 읽었던 순수시들은 인생의 피 한방울 안들어있는 관념들의 하모니일뿐이고 사랑하고 고통받는 삶의 야만스러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삶의 가치관이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 몰라요."
언제까지 관조하고, 평가하고, 이리저리 재보고, 망설이며 선택을 미루고 살 것인가. 인생을 진정으로 즐기는 자들은 즐기는 것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두 세 발자국 떨어져서 평가하고 구경하는 자들은 시간이 넘칠뿐.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나는 외의 기능이 너무도 거침없고 대담한, 정신은 누군가가 건드릴 때마다 불이 되어 타오르는 이 사나이에게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주인공이 책으로 생각으로 관찰로 고민하던 것들을, 조르바는 몸으로 실천으로 경험으로 채워넣어 삶을 꾸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조르바의 생각에는 거침이 없었고 언제나 명확하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경험한다는 것은 삶에(책에서는 대지라고 은유하는 것에) 가장 밀착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가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술을 토할 때까지 먹어보지 못한 자만이 술을 동경한다. 가득, 한없이 체험하고자 하는 열정, 정열이 필요하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중략)...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는다."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 계획이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할 때가 두려움을 느낄까 아니면 실제로 무너져내렸을 때 두려움을 느낄까. 아마 무너져내릴 것이라고 미리 걱정할 때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막상 무너지고 깨지고 나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사라진다. 무너지고 깨졌을 때 내 속의 정신은 아직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또 다시 도전하고 시도할 힘이 넘쳐난다면 무너질 걱정이 무슨 두려움이 될까.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중요한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 마음이다.
"만고에 부족한게 없어요. 하나도 없지. 한 가지만 제외하고! 무식 말예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정하고, 이해타산을 고려하고... 그 잘 돌아가는 머리가 나를 주저하게 만들고 단념하게 만든다.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행복하고 진정으로 슬프려면 흠뻑 젖으려면! 그만 고민하고 그만 재고 바로 뛰어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