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촌
명희는 뚜껑이 덮힌 들통 안에서 출렁일 때마다 걸음을 늦췄다.
아침 먹을것만 담아달라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그걸 누구 코에 붙이냐며, 해장국을 들통에 절반이나 담았다.
큰 길로 내려올 때까지는 들을만 했는데, 걸음을 재촉할수록 출렁하는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는 통에 조심하느라 진땀이 났다. 양 손으로 들고 걸으려니 걸음에 들통이 차여서 한 손씩 번갈아 가면서 걸음도 늦췄다. 어깨가 빠질 것만 같은데, 천천히 걸어야 하니 영천시장까지 천리는 되는 것만 같다. 한참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 걸음이다.
들통 안에서 춤을 추는 해장국을 다독이느라 쌀쌀한 아침 기온에 등에서 땀이 송글송글 맻혀 올라왔다.
"후~"
차가운 공기를 향해 입김을 불어보았다.
하얀 김이 공기 중으로 뿜어져 나왔다.
볼에 닿는 공기는 차가운데 등과 가슴에서 열이 훅훅 올라왔다.
"아침부터 심부름이야"
투덜대면서도 매일 심부름은 도맡아서 하는 명희다. 어느새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데,
"조랑말 아침부터 어디 갔다 오니?"
"안녕하세요"
화수네 할아버지가 골목을 쓸고 계셨다.
"할아버지네 심부름 다녀와요"
"그래? 부지런도 하지"
화수네 할아버지는 손주들한테는 엄하시지만 명희한테는 항상 살갑게 '조랑말아~'하고 인사를 건넨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명희는 팔다리에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엄마~ 다녀왔어요"
하얗고 기름진 밥냄새가 퍼진 부엌에 들어서자 침이 꼴딱 넘어갔다.
"수고했네. 많이도 담아 주셨다"
엄마는 국그릇에 그득하게 담고 남은 것을 냄비에 옮겨서 명희에게 건넸다.
"이거 화수네 갖다드리고 와"
"네~"
명희는 얼른 냄비를 들고 나갔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마당을 쓸고 계셨다. 아침마다 집 앞부터 큰 길까지 큰 빗자루로 길을 쓰는 것은 할아버지의 일과였다.
"할아버지~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어? 아유~ 뭘 또 챙겨 그래? 잘 먹겠다 전해드려라"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집집 마다 차례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처마를 나란히 한 집집마다 담을 넘어 오는 맛있는 냄새에 아이들은 기분이 붕 뜬 것만 같았다.
어느 골목이나 낮에는 모두 대문을 열어둔 채 골목에 나와서 앉아 있거나 마당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자들이 일터로 간 시간에는 이웃끼리 드나들며 음식을 나누고 하룻밤 사이의 소식을 전했다.
요즘 들어 할머니는 도둑놈들이 다닌다며, 이제 대문 닫고 살아야 된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도둑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세숫대야나 함지박 같은 것을 훔쳐갔다. 어쩌다 안방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얘기도 들렸다. 멀게는 길 건너, 가깝게는 다른 골목에 형제, 사촌, 사돈이 살고 있으니 인척이 아닌 이웃이라고 해도 사돈의 사돈이거나 사돈의 친척, 친척의 사돈인 경우가 많았다.
서로의 사정을 모두 알고, 가족이라고 해도 무방한 사이인 사람들끼리 살고있던 골목에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전쟁 이후 부터다.
전쟁으로 집을 떠나온 사람들이 빈 집을 한 칸씩 나눠 한 지붕 아래 일고여덟가족이 살기도 하고 시골에서 돈을 벌려고 올라온 사람들에게 문간방을 셋방으로 내 주기도 했다.
이불 봇짐 하나만 들고 왔다는 사람들이 안쓰러워 부엌을 나눠 쓰고 마당을 나눠 썼는데, 기본적인 살림살이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어 니 살림 내 살림의 구분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양식은 누구에게나 귀해 쉽게 나눌 수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쌀이 푹푹 줄었다고 화를 내는 소리가 들리고, 집안 살림을 몽땅 갖고 야반도주를 했다는 볼멘 소리도 들렸다. 할머니 집 문간방에서 아이 하나를 데리고 살던 안씨 아줌마도 그랬다. 처지가 안됐다며 끼니마다 반찬을 나누고, 화성옥 일도 도왔는데, 할머니한테 인사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할머니는 안씨가 열심히 착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말도 없이 짐을 싸서 나가면서 할머니 물건에도 손을 댔다며 욕을 욕을 해댔다.
그래도 영천 사람들은 밥 때가 되면 음식을 이웃들과 나눴다. 석유 곤로에 바삭바삭하게 부친 부침개를 접시에 담아 앞, 옆 집으로 나눴고, 화성옥 해장국으로 아침상을 차리는 날은 몇 냄비에 나눠 담아서 아이들이 아침상 심부름을 했다. 화성옥 해장국 한그릇이면 하루종일 속이 뿌듯하다는 인사를 듣고 모른척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힘들게 심부름을 다녀온 명희는 아침상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있는 것을 보고 또 기분이 좋아졌다.
감자를 채 썰어서 소금에 살짝 절궜다가 물기를 꼭 짠 후 설탕을 뿌리고 기름에 달달 볶아서 뚜껑을 덮고 바삭하게 눌러붙게 만든 감자 볶음은 엄마의 주특기다. 금방 지은 밥에 얹어 먹으면 밥 한 공기가 뚝딱이고, 마늘장아찌 간장에 비벼 먹으면 담백하고 짭짤한 맛에 밥이 부족하다.
엄마와 할머니는 점심에는 국수를 삶거나 흰 떡을 밥에 넣고 끓이기도 했다. 맨 밥은 식구들이 모두 있을
때만 지어 올렸다.
육개장이나 장국밥을 먹을 때 반찬으로 먹는 각종 나물을 그 위에 얹어서 한 그릇 내 놓는 것처럼 국수든 끓인 밥이든 그 위에는 감자 볶음에 김치나 무생채를 올렸다.
밤새도록 끓여서 골수가 녹아든 진한 된장국에 담백한 감자 볶음과 간장, 고추장에 박아 두었던 오도독한 무장아찌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병은은 자기 대접에 들어있는 고기 덩어리를 아이들 것으로 옮겼다.
"오랫만에 밥 한 번 잘 먹네"
밥 때만 되면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며 밥 먹기를 싫어하는 명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추석이면 독립문 앞 대로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동네 남자들은 아이들을 위해 널을 놓기도 하고 나무를 깎아 만든 팽이와 엽전에 끈을 꿴 제기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누가 누가 높이 올라가나 내기하며 널을 뛰었다.
"우리 저기 올라가자"
"그래"
정균이 독립문 기둥의 홍예문을 열고 앞장 섰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더듬어가며 올라가야 하지만 계단이 좁아 벽을 짚으며 꼭대기까지 갈 수 있었다.
"다 왔다"
정균이 돌 난간 앞에 서서 두 손을 번쩍 들며
"만세. 만세"를 외쳤다.
뒤 이어 올라온 명자와 명희도 두 손을 들어
"만세"를 외쳤다.
대로에서 놀던 아이들이 독립문 꼭대기에서 만세를 외치는 세 아이를 보며 키득 키득 웃었다.
"와~ 나도 올라갈래"
"나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