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
"아이고, 장가 들 때 서울에 조선기와집 사준 사람은 저 이 밖에 없었어"
"그게 다 그 어머니 덕이야. 저 서방님 어머니가 시집 올 때 말이야. 대문 앞에서 가마를 딱 내리는데, 그 날이 섣달 지났으니 날이 얼마나 추워. 근데 글쎄, 하얀 백사가 그 앞을 지나가더래. 새색시가 그걸 치마폭으로 폭 싸서 안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잖아"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서 천석꾼이 됐구만"
"상사롭지 뭐야. 그런데 그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그렇게 구박을 했어. 아들이 며느리 방으로 들어갈라치면 공부해라, 날이 안좋다면서 둘 사이를 갈라놨대"
"갈라놨으니 다섯만 낳았구만"
"킥킥, 아이고 주책이야. 웃음이 다 나오네"
"그러니 그 며느님이 단명을 했지. 거기다 큰 며느리가 못된게 들어와 갖고."
"이 사람아!"
"시어머니랑 며느리랑 같이 한 패가 됐잖아"
"그러니 어렸을 때 어미 잃은 막내아들이 얼마나 안쓰러웠겠어. 그래서 장가들 때 서울에 조선기와집 한 채 사 준 거지"
"그 기와집 없어진지가 언젠데?"
"그걸 어떻게 없앨을까? 저 서방님도 서울에서 공부까지 했다던데?"
"전쟁 때 끌려다니느라 그랬겠지. 전쟁 끝나고 어디 제 구실할 데가 만만찮았나? 저 또래 서방님들이 다 오늘 내일하다 갔잖어"
"아이고, 애들이 불쌍하네. 막내가 아홉살이라던데.... 혼자 저 애들을 어떻게 살피누?"
"젊다. 젊다. 아깝다. 참 아깝다"
작은 도랑을 지나 산 끄트머리에 파 놓은 구덩이에 관을 눕혔다. 삽으로 흙을 퍼서 털썩.
관 뚜껑에 떨어진 흙이 쨍그랑 높은 소리를 냈다.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는 흙이 쌓이면서 점점 둔탁해졌다.
명희는 고개를 들어 산 꼭대기를 올려다 봤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조부모의 묘소로부터 시작해 자손의 순서대로 묻힐 선산.
뒷통수가 등에 닿을 듯 턱을 높이 치켜들었지만 조부모의 묘소 뒤를 빙 둘러 안쪽으로 구부정하게 가지를 뻗은 붉은 소나무와 봉분 앞을 지키는 문인석과 양모양 말모양 석상의 머리만이 언뜻 보일 뿐이었다.
집 안을 수놓을 자손들을 모두 품에 안기 위해 제일 높은 곳에 묫자리를 만들고 큰 아들부터 막내 아들을 떠올렸을 터이다.
그 사이에 묻힌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상복을 입고 선산 끄트머리에 서서 장례를 지키고 있었다.
왜?
왜?
산 끄트머리 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가장 끝자식인데....
가슴을 활짝 편 채 해를 듬뿍 받고 있는 듯한 조부모의 묘소 주변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 낮의 해가 따가웠다.
'고무신을 신은 발 아래 흙이 지물지물한 것은 어제 비가 와서일까?'
할아버지는 끝내 장지까지 오지 못하셨다.
장사치르는 내내 몇 번이고 혼절을 했는지 모른다. 친자식이 죽어도 그렇게 서럽지는 않을 것이라면 수근대는 소리에 명희는 그만
"밥이 넘어가?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밥이 먹히냐"며 발광을 하고야 말았다.
아버지를 산 끄트머리에 모시고 돌아와서 등교한 첫 날이었다.
조문을 왔던 음악 선생은 조용한 목소리로
"상은 잘 치뤘니? 간암은 귀한 병이야. 부자들만 걸리는 병이란다. 아버지 모시느라 고생했다"
억울한 마음에서일까 명희는 친구들의 위로를 들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부터 난 아버지 없는 아이가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