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한 낮인데
아버지 신발이 댓돌 위에 놓여 있다.
국민학교 2학년인 윤무는 햇볕을 받고 있는 아버지 신발에 손을 대 본다.
따뜻하게 데워진 신발 위로 손그늘을 만들어 본다.
반짝이는 구두는 아니지만 햇볕을 오래 쬐면 신발이 쪼그라 들까봐 작은 그늘을 찾아 신발을 옮겨 놓았다.
안방에서 어떤 소리가 들릴까 싶어 옷자락이 부스럭 거리며 내는 소리까지 조심스러워졌다.
"어이쿠, 거기서 뭐해?"
안방에서 나오는 영숙은 마루 끝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는 막내 아들의 속이 깊은 것을 안다.
여상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는 명자와 12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귀 떨어진 순서가 속 깊은 순서는 아니었다.
"커서 큰 인물 될거다"는 소리를 유독 많이 들어서인가 막내인데도 어쩐지 의젓하고 속눈썹을 내리며 생각에 깊게 빠져드는 모습이 눈에 띌 때가 잦았다.
"아버지 주무셔. 밖에 가서 놀다 와"
아이는 말이 없이 앉아 있었다.
"윤무아, 할머니네 좀 다녀올래? 가서 할머니한테 상추 좀 따주세요 해"
말없이 대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를 보며 영숙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울지 말자. 울면 안 돼'
바가지에 담은 쌀을 살살 휘저어 쌀겨를 걸렀다. 뽀얀 물이 나올때까지 천천히 물을 붓고 바가지를 휘저어 하얀 쌀이 보일 때까지 쌀을 씻었다.
참기름만 두른 흰 쌀 죽은 약이다.
이 약을 먹이면 무슨 병이든 거뜬히 이겨내리라.
병원에 다녀오기 전까지 건강했던 남편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국 한 그릇을 뚝딱하던 그였다.
묽게 쑨 흰 죽 한 그릇을 천천히 넘기는 중에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 한 숟갈 넘기는게 왜 이렇게 힘이 드나. 그만 누워야 겠어요"
영숙이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남편의 다리를 꼭 꼭 주물렀다. 편안한듯 곧게 뻗은 다리가 나무기둥처럼 딱딱하기만 했다.
"어휴~ 애들은 언제 와요?"
"곧 올 때 됐어요"
"어린 것들이 놀라지 말아야 할 텐데"
"여보, 미안해요"
"흑, 뭐가 미안해요?"
"미안하지. 애들이 아직 어린데"
"그런말 말아요. 당신 일어날 거예요"
"그래"
삐그득~
나무 문 열리는 소리가 조심히 들렸다.
병은이 얕은 잠에 빠져들었는지 눈을 감은 채였다.
살그머니 열린 방문 틈으로 동그란 눈이 방안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학교 다녀왔니?"
"네"
"옷 갈아입어. 밥 먹자"
"아버지는?"
"주무셔"
"엄마"
"그래, 괜찮아. 밥 먹자"
계절이 새로 오기도 전에 병은은 깊은 잠이 들었다.
축산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명희는 상복을 입고 대문 밖에 조등을 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마당 한 켠에서는 윤무가 하염없이 땅에 못질을 하고 있었다.
긴 못을 탕탕 때려 땅 깊숙히 박고나면 긴 못 하나를 또 땅에 대고 박았다.
더이상 박을 곳이 없어지자 흙을 파헤치고 못을 끄집어 냈다.
그리고 또 긴 못을 탕탕 쳐서 땅에 박았다.
"아깝다. 너무 아까워"
흰 옷 사이로 노인의 몸이 헐렁하게 움직였다.
"내 사위 아깝다. 마흔 셋이 뭐냐? 한 평생 고생만 한 내 사위 아깝다. 흑 흑"
"쓸모없이 한 갑 넘긴 내 명줄 가져가지. 뭐가 바빠 서둘렀냐? 아깝다 아까워"
"아버지 좀 모시자. 저러다 병 나시겠다"
영순이 아버지를 부축하려고 옆구리에 손을 넣었다. 옷자락만 손에 걸리고 노인의 바싹 마른 팔이 쉬 쥐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