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사람들

항상

by 은의 정원

양단을 꿰는 바늘은 바늘귀가 걸리지 않을만큼 가늘어야 한다. 곱게 짠 옷감에 바느질 자국이 남지 않아야 윤기가 반드르르하게 흐르는 비단의 결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명희가 결혼식 들러리가 될 때마다 영숙의 한복 짓는 솜씨는 두고 두고 칭찬거리였다.


"음식 잘하는 손 바느질도 잘한다고. 얼굴도 곱고, 사람이 얌전한데 바느질 솜씨도 참 얌전하네"


"우리 딸 시집갈 때도 한 벌 해줘요"


"큰 일 없으면 해드릴게요"


병은이 있을 때는 소일거리였던 한복 짓던 일이 이제는 밤낮 가리지 않고 바늘 쌈지를 곁에 두고 있게 되었다.


"치마 주름 잡는 건 내가 할게요"


"그래, 곱게 잡아야 한다"


"치마가 몇 벌이야?"


채 풀지도 못한 비단이 방 한 쪽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행촌동하고 교북동에서도 맡겨놓은게 있어서 그렇지"

"매일 밤새네 그려"

"감사한 일이지 않니? 아버지 없이 어찌사나 했는데 이렇게 일이 들어오고"

"그치"


아버지를 선산에 묻고 악을 쓰던 명희도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농대에 가고 싶던 꿈은 볕에 녹아 사라지는 눈송이처럼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국민학생인 두 동생을 보고 차마 대학등록금을 마련해달라고 비빌 곳이 없었다.

같이 대학생이 되어서 공부하자던 작은 삼촌은 명희보다 더 속이 상했는지 쭈뼛거리며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미안하다"

"삼촌, 무슨 말이 그래? 언니도 대학 안가고 취직했잖아"

"명자는 상업학교 나왔으니까 그런거고. 넌 대학에 가고 싶어했잖아"

"뭐, 아쉽지 않은건 아닌데, 그래도 어쩔수 없잖아. 윤무가 국민학교 졸업하려면 3년이나 남았어. 엄마 혼자 애 넷을 어떻게 공부 시켜?"

"큰 집에서는 아무 도움도 없니?"

"우리 큰 엄마 몰라? 그렇게 큰 농사를 지어도 쌀 한 톨 안 보내"

"이런 썅! 양반은 무슨!"

"원래 그랬어. 장독대에 정과랑 다식을 한가득 해놓고도 요만~한 접시에 달랑 내오는 깍쟁인 걸"

"그게 깍쟁이니? 못된고 욕심많은 거지! 저 인간들이 담보만 안 잡혔어도 네 등록금은 아버지가 해주시는 건데. 아버지 엄마도 매일 밤 그 얘기만 한다"

"에이, 참. 대학생이 뭐 그렇게 많다고, 나까지"


형무소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중간쯤으로 이사를 온 지 몇 해.

병은은 부지런히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영천 시장 뒤 전셋집에서 무악동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할머니 집에 비하면 마당도 작고 뒷마당도 없는 작은 집이었지만 파주 큰 집에서 올라온 두 조카에게 방을 내줄만큼은 되었다.


"오늘은 뭐 해 먹을까?"

"김치 부침개 부칠까?"

"느끼하게"

"그럼?"

"만두 빚어먹자. 맵게하지 말고 김치 씻어 넣고 담백하게"

"그럼 니들이 반죽해. 내가 가서 속 만들어 놓을게"


건넌방에 모여 야식 먹으면서 노는 날이 매일이었지만 날이 짧아질수록 입이 궁금했다. 김치 부침개 아니면 만두를 빚어먹을 테니 엄마는 늘 저녁이면 찬합에 김치 한 포기를 꺼내 놓았다.

여름이면 김치 대신 소금에 살짝 절인 배추를 썰어넣거나 애호박과 두부를 넣어 담백하게 만드는 만두가 먹고 싶었겠지만 날이 쌀쌀해질수록 새콤하게 익은 김치만두가 먹고 싶어졌다.

물에 씻어 빨간기를 뺀 김치를 종종 썰고, 소고기와 돼지 고기 간 것을 마늘, 설탕, 간장을 넣고 볶아서 으깬 두부와 섞어 만든 소를 들고 부엌을 나섰을 때다.

형무소 건물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굽이져 나왔다.


드르륵

"만두하니?"

오늘도 밤을 새워 바느질을 해야할 모양이었다.

엄마는 잠깐 허리 피러 나왔다며 마루에 서서 몸을 이리 저리 흔들었다.


"아이고, 불쌍한 목숨 하나 또 사라졌구나"

"뭐가?"

"저기 사형수 싣고 나오는 차잖니"


명희는 그제서야 어렴풋한 빛줄기 사이로 흰색 운구차인 것을 알아 보았다.


"저기 얼마나 많은 불쌍한 목숨이 갇혀 있니? 그 앞에서 옥바라지하는 가족들은 어떻구?"

"엄마! 누가 들어요. 똥굴 앞이고 골목마다 군인들이 다닌다는데"

"그래, 말 조심해야지. 무서운 세상에"




"편지요!"

"네!"


"편지 왔어요. 등기우편인데. 허병은씨 계세요?"

"네? 저희 아버지인데요"

"등기예요. 아버지 안 계세요?"

"네."

"자, 여기"

우체부는 편지를 건네고는 수첩에 무언가 적고 돌아섰다.


"엄마, 아버지 앞으로 등기가 왔는데...."


영숙이 희미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편지 봉투를 열었다.

"성명 허병은, 귀하는 응시하신 자격 시험에 합격하셨음을 통보합니다. 합격자는... 흑, 흑..."


영숙이 더이상 읽지 못하는 편지를 받아든 명자도 다음 글자를 읽지 못했다.

눈물이 순식간에 넘쳐 흘러 글자를 한 자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

"흑, 아버지가 전매청보다 좋은데 간다고 시험봤었는데"

눈물을 훔친 영숙의 얼굴이 한층 말갛게 보였다.

"이 때는 안 아팠어. 참, 사람은 없는데..."


"흑, 우리 아버지 보고 싶다"

"아깝다. 아까운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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