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방황의 시작 10대
공부는 정말 필요할까?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
담임 선생님께서 학생 기록 관찰란에 "위 어린이는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고, 매사에 호기심이 가득 찬 학생"이라고 쓰셨고, 이를 본 엄마는 '초등학생이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다'며 크게 웃으셨다.
학생 기록 관찰란은 샘플이 있어서 선생님은 여러 개 중 하나를 골라 쓴다는 걸 성인이 된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적힌 그 한 줄이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 거란 건 그땐 알지 못했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 나는 공부를 꽤나 잘했다. 수능점수는 계속 나오지 않았는데, 나름 착실한 학교생활을 하며 내신점수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현상과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에 조금씩 의심이 갈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왜 공부를 하지?"
어른들은 늘 답을 주지 못했다. 인생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말하지 못한 거였지만, 고등학생인 나로선 이 궁금증을 해결하지 않고 든 더 이상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공부는 사회를 일렬로 나열하는 나쁜 시스템이야. 옆반 윤수도 착하고, 베프 현진이도 좋은데 그 공부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 우리가 헤어진 다는 건 있을 수 없어.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한 유토피아는 없을까?"
"시간표 안에 네모칸을 꽉 채운 과목들도 이해할 수 없어. 문학이니 국어니 체육은 그렇다 쳐도 쓰지도 않는 불어와 한문은 먼데? 그리고 수학 시간에 코사인. 탄젠트는 왜 배우는 거야? 어른이 되어도 전혀 써먹질 않는데 왜 이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 넣어야만 하지?"
명분이 없다면 더 이상 공부를 잘할 수도 성적과 등수가 인생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더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그 답은 몇 년이 지난 후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 1. 유토피아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나와보니, 학교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같은 사무실에 있어도 저녁에 후배랑 술만 먹으면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는 선배 욕을 하고, 티타임을 하면 상사 욕을 했다. '누군가도 내 욕을 그렇게 할까?'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소한 정(情)을 주지 못했고 그럴수록 관계도 좁아졌다.
모든 사람과 행복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하고 싶었지만, 물고 뜯고 맛까지 보는 사회라는 정글에 나와보니 내가 생각했던 유토피아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잡아먹히거나 퇴출될 뿐이었다. 몇백 년 전처럼 총이나 칼을 차서 강함을 보여주는 세상이 아니라, 이 머리에 많이 구겨 넣고 든 게 많으면 그게 무기였고 실력이자 경쟁력이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 2. 많은 과목을 공부한 건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응용"하라는 것이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것을 어른이 되어도 한 번도 쓰지 않는 건 틀리지 않았다. 중학 산수에 나오는 공약수나 공배수도 쓰지 않았고. 문학시간에 나온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도 어른이 된 후, 어느 곳에서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양한 지식을 머릿속에 넣은 건 직장생활을 해보니 매우 잘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난 직장에 들어가서 경영지원. 총무팀에서 근무하는데 마감 때 전표를 치려면 회계지식을 알아야만 했다. 예산을 신청하려면 앞으로 예산 추이도 알고, 분석도 해야 했다. PPT를 만들 때도 도형을 몇 개를 넣어야 상사가 보기 좋을까? 고민할 때도 수학 시간 때 배운 많은 도형문제들이 도움이 되었다. 도형이 눈에 익숙하다고 할까? 사회에 가면 학교에서 배웠던 것보다 더욱 방대한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얼마 전 어른이 되고서 먼지 묻은 고등학교 교과서를 버리려고 하다 문득 열어봤는데 글씨도 크고 책 두께도 얇음에 놀랐다. 그때는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였는데. 세상은 놀랍게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알아야 할게 훨씬 더 많은 곳이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 3. 오래 앉아있는 연습을 미리 한 거다
1~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6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고 한다. 어느 수능 준비학원 현수막에 걸린 웃지 못할 문구다. 근데 이게 웃고 넘길 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치킨을 먹어야 하고 누군가는 치킨을 만들어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치킨을 갖다 줘 야한다. 사회 시스템은 모두 이렇게 돌아간다. 치킨을 시키려면 앉아서 하고 치킨을 만들거나 배달할 땐 앉을 수 없다. 뛰어다니고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좋은 직장. 선망되는 직업일수록 앉아서 하는 일들이 많다. 대기업 사무직. 공무원. 의사. 변호사. 심지어 예능도 앉아서 하는 예능이 육체피로가 덜하다. 공부는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 과정이고 사회에 나오기 위해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그대여 아직도 공부하기 싫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