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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Sep 05. 2020

Happy birthday to me

생일 축하해. 살아낸다고 수고했다.

생일에 꽃을 선물하는 이유 -  때로는 도대체 끝이 어디일지 모르는 힘든 삶의 순간들을 결국은 살아낸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이다.
생일에 케이크를 선물하는 이유 - 이 달달한 케이크를 맘껏 먹고 또 살아내야 할 내일의 순간들을 위한 힘을 비축하려고.


49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나에게


어젯밤엔 조용히 비가 왔다. 내일은 생일이니까 혼자서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자고 생각하며 들었다. 아침엔 태풍이 비껴가면서 조용한 비가 내렸고 낮 1시까지 야행성 아들과 딸은 쿨쿨 잠을 잤다. 오빠가 보내주는 축하꽃은 잘못된 주소로 인해 배달하시는 분의 짜증 섞인 전화가 이어져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대낮에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들미워지기 시작했고 제주도에 있는 남편도 전화를 받지 않아 총체적으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자고 있는 딸에게 생일날 굶어 죽겠다고 밥 좀 먹자고 더니 후배가 끓여준 미역국을 딸이 데우고 있었다. 살짝 기분이 풀어져 계란 프라이까지 요구하고 식탁에 앉았다.

시어머니께서 어제 당신의 아들, 즉 나의 남편이 전화해서 생일날 며느리한테 잘해주라고 했다며 화를 내신다. 다 같은 날인데 뭘 어떻게 하냐면서. 헐이다. 예전에는 속이 상했지만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 아들과의 문제는 아들과 해결하시길. 이 나이게 뭐  이런 것쯤이야.


아들이 몇십 번이나 물어본 생일선물을 무선 이어폰으로 정해 주었다. 물어봐주는 것도 고마워해야 하는데 알아서 해주길 바랐던 마음은 잘못  늙어가는 증거이다. 너그러운 마음의 여유가 없 화나고 화내는 것.


집에 와서 조용히 일기를 썼다. 감사의 일기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사는 나이는 아니다. 가족 모두  무탈하기를  일 없기를, 속을 다 꺼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계속 곁에 있기를,  질병에 고통받지 않기를, 간병으로 나의 시간을 쏟지 않기를 기도했다.


365일 중에 하루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가 아닌 저 멀리 가버린 나 자신을 위한 하루로 보내고 싶었다. 미역국도 용돈도 대접도 받지 않아도 되지만 존중은 받을 수 있는 하루면 되었다.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평온한 하루에 또 감사하자. 한 살 더 먹으며 차근차근 늙어가는 준비를 제대로 하자. 이유 없이 우울해지지 않기를. 나 말고 자식들이 더 행복하기를 온유하고 평온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만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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