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을 잊는 것에는.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날개를 펼쳐 노년과 성숙과 고요함을 향해 앞으로 날아가야 한다.
모든 사람은 땅 위에 혼자다,
햇살에 붙들린 채로.
그리고 벌써 저녁이다!
- 살바토르 콰시모 -
인생이 오후를 지나 저녁을 향해 가고 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 시간은 지났다. 어릴 적 아버지가 편찮으셨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너무나 말라 무엇을 해달라고 응석을 부리거나 심부름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가여운 아버지를 위해 어린 나는 슬픔을 숨기고 씩씩한 척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씩씩한 줄 알았다. 위로받기 전에 위로하는 법을 먼저 알았다. 그것이 시작이었을까? 뭔가 해달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떼를 써 본 기억이 없다. 학업도 결혼도 직장도 다 알아서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소한 일에도 그들의 마음에 저절로 신경이 쓰이고 아프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늘 보고 싶고 좋은 것을 보면 저절로 생각나고 항상 더 잘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러한 사랑과 애타는 돌봄을 받지 못한 어린 내가 보였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만난 시어머니, 시동생도 나에 대한 배려와 격려보다 오직 남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바합리적인 요구를 했다. 잘 지내보려고 이상적 인간관계가 가능하리라 기대하며 그들의 요구에 부응했었다. 그러다 지쳤고 실망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관계의 진정성을 포기했다. 나를 포기한 채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었더니 점점 더 당연하게 서운해했고 요구사항은 더 많아졌다. 이해가 가지 않은 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남편이 아프고 나서 나는 그 모든 노력을 일시에 끝내 버렸다. 서운했고 더 이상은 없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당황하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으나 그 흔들림을 파고들자 단호히 관계를 차단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것도 내가 내킬 때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억울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정상적인 관계는 쌍방이 노력해야 한다. 일방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오십 년이나 살고 뒤통수를 세게 맞고 나서야 알게 된 나는 정말 무식하다.
시간을 거꾸로 만들어 돌아갈 수는 없다. 10년 뒤에 똑같은 후회로 뒤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도록 끊어야 할 관계는 끊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모든 일에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만나는 사람도 먹는 음식도 소중한 시간도 나쁜 것부터 먼저 없애야 한다. 너 잘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