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에 맞으면 아픔을 느끼되 그 아픔을 과장하지 말라고 붓다는 충고했다. 병이 난 제자를 찾아가서도 아파하되 그 아픔에 깨어 있으라고 가르쳤다. 상처에 너무 상처받지 말 것, 실망에 너무 실망하지 말 것, 아픔에 너무 아파하지 말 것 - 이것이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이다. 잠시 아플 뿐이고, 잠시 화가 날 뿐이고, 잠시 슬플 뿐이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맑고 투명해진다.
우리는 첫 번째 화살에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익숙하지만, 두 번째 화살을 다루는 데는 매우 서툴다. 칼루 린포체는 말한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증오에서 나 자신이 해방되는 일이다."
밖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피하거나 도망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쏘는 화살은 피할 길이 없다. 정신에 가장 해로운 일이 '되새김'이다. 마음속의 되새김은 독화살과 같다. '문제를 느끼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문제 때문에 쓰러지지는 말라.'라는 말이 있다. 첫 번째 화살을 맞는 것은 사실 큰일이 아니다. 그 화살은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화살 때문에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는 것이 더 큰일이다. 이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것은 마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외부의 일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이다. 자신이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쏠 것인가?'
삶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리석으면 더 고통스럽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는가는 그들의 카르마가 되지만, 그것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당신 자신의 카르마가 된다.'는 말은 진리이다.
- 걷는 곳마다 마음꽃이 피었네, 장산 -
어느새 시월의 마지막 날도 지나고 이제 겨울이 다가온다.
올초 인터넷에서 본 토정비결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읽고 나니 찜찜했다.
아뿔싸! 그런 찜찜함을 가지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자 그것과 연관시켰다.
어리석으면 삶이 더 고통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점괘와 상관이 분명 없다.
내년에라도 정신을 차려서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를 잘 데리고 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칠 것이다.
나의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