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위로
젊은 시절에 나는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건축하는 토대는 연약하기 짝이 없고, 우리는 불의의 사태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비극적인 사건들이 우리의 평온한 행복을 난폭하게 공격한단다. 그리하여 실제의 정신적 외상과 그것에 대한 생각이 서로 혼동되고 염려가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지.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나는 너무나 예쁘지만 너무나 의존적인 너를, 글을 읽을 수 없고 쓸 수 없는, 그러나 이해력은 있는 너를, 마음속의 질문들과 소망, 낙담, 슬픔을 분석해 내기가 너무나 힘든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단다. 자주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어. 뭔가 해야 한다고 느꼈지만 잘 해낼 수 없었고, 소득 없이 녹초가 될 뿐이었어.
하지만 모든 것이 간단했지. 너를 사랑하고, 네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것으로 충분했어. 하지만 부드러움과 고통은 함께 존재하지 못할 때가 많지. 고통은 매우 거칠고 정상을 벗어나는 감정이니까. 사람의 인생은 내가 스무 살 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비극적이었어.
- 존재한다는 것의 행복, 앙투안 갈랑 -
젊음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 그 젊음이 영원할 줄 알았고 앞으로의 내 삶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소한 불운 외에는 오직 적당히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살아볼 만할 생이라 믿었다. 왜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을 의심 없이 믿었을까? 왜 그랬을까?
결혼을 할 때도 나는 신중하지 못했다. 남편은 가난한 집의 생계를 유지하는 장남이었고 나이도 많았고 특히 성격이 매우 까칠했고 키도 작았다. 왜 그를 선택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저 운명 아니면 신의 섭리 이렇게 두리뭉실 받아들였다. 하기사 이제와 뭐 어쩌겠냐고 체념하는 편이 편했다. 살다 보니 나의 무식함이 정확한 답이었다. 무식한 데다 용감하고 쓸데없이 동정심은 많았다. 감히 내가 남의 삶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잘못된 착각도 했다.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닌 가치관과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나와 비슷한지를 봐야 했다. 또한 모두에게 오는 불행이 내게도 당연히 올 수 있음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무조건 불행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암시하고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좋은 생각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불행은 숨을 쉬는 것처럼 매일 나를 비껴가기도 했지만 올해는 나를 정통으로 때렸다. 세월이 무식함을 이제 막 자각한 나에게 더 어려운 숙제를 주었다. 자, 이제 너 나이도 들었고 무식한 것도 알았으니 젊은 날처럼 실수하지 말고 다른 숙제를 줄 테니 지금은 잘할 수 있는지 한 번 볼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여전히 숙제가 어려워 쩔쩔매면서 쪼그라든 심장으로 더 심한 불행은 나를 비껴가기를 신에게 빌고 있다.
사람의 인생은 어렸을 때 꿈꾸었던 무지개가 가득 찬 따뜻한 동화가 아니었다. 해피엔딩도 권선징악도 아닌 것 같다. 묵묵히 견뎌내는 일꾼들의 그림이 있는 밀레의 그림 같다. 누군가는 인생이 소풍이라고 했다. 소풍 온 날 하늘이 맑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쏟아지는 비를 피할 곳도 없고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인솔자는 없어져 갑자기 서운하고 슬퍼지는 그런 소풍. 그다음 우리는 어디로 돌아갈까? 힘든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반갑게 맞아 줄 가족이 있는 그런 곳이 기다릴까? 생은 잠깐의 햇빛을 즐긴 것만으로 충분히 살아볼 만한 것이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무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