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평범한 나날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네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결코 알지 못했을 충만한 시간들을 보낸단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가 "행복은 잘 견뎌낸 불행일 뿐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듯이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절박하게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아주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평범한 나날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언젠가 나는 회복할 가망이 없는 예쁜 아이를 포기하게 될까? 그것에 대해 글을 쓰기가 부끄럽구나. 나는 소박하고 결핍된 모습 그대로 너를 영원히 사랑하니까. 사람들은 네가 나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너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단다. 우리가 함께한 중요한 경험들은 신기하고 놀랄 만큼 강렬했어. 네 상태에 대한 미련 따위는 버렸단다. 미련을 갖는 것은 진실에 대한 모독이야. 슬픔도 차츰 잦아들었단다. 사람은 극심한 감정적 긴장감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지. 삶에 동화되는 그 무한한 슬픔에 점점 익숙해진단다. 계속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 끈질기고 파괴적인 특성은 사라지게 돼. 삶의 폭이 줄어들지만 그 결은 더 매끄러워진단다.
-존재한다는 것의 행복 (장애를 가진 나의 아들에게), 앙투안 갈랑 -
아주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평범한 나날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이 글은 소아과 의사인 저자가 장애를 지닌 막내아들에게 쓰는 편지이다. 물론 아들은 이 편지를 읽고 이해할 수 없지만 아버지는 이 일을 꼭 해야만 했다. 큰 불행이 없다고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큰 불행이 오기 전, 이제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 작은 불행에 투덜거렸다. 다가올 불행은 알지 못한 채, 더 큰 행복을 갈구하고 기대하며 살아갔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닥치니 불행이 없던 그 시절 교만하고 감사할 줄 몰랐던 내가 보인다. 한 치 앞도 모른 채 불행이 나는 비껴가리라 착각하며 더 멋진 행복이라는 뜬구름을 잡으려던 나는 바보였을까?
사람은 극심한 감정적 긴장감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지. 삶에 동화되는 그 무한한 슬픔에 점점 익숙해진단다. 계속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 끈질기고 파괴적인 특성은 사라지게 돼. 삶의 폭이 줄어들지만 그 결은 더 매끄러워진단다.
남편의 상태를 서서히 받아들이며, 인간관계도 취미라고 여겼던 활동도 정리가 되고 있다. 삶의 본질에 더 집중하고 먹거리에 집중하고 수면의 질을 소중히 여기며 부정적인 생각을 그만하려고 노력한다. 슬픔에 익숙해지면서 슬픔에 오래 머물지 않으려 애를 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순간은 여전하지만 빈도는 줄었다. 이제 변화된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 속에서 고통이 아닌 소소한 행복을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 바람이 선선하고 가을 햇살은 너무나 이쁘다. 맑은 하늘에 그려진 구름은 운동할 맛이 나게 했다. 열심히 했더니 남편의 의학적인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위축된 뇌가 복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능은 더 나빠지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나머지는 모르겠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정말 삶의 폭은 줄었지만 결은 더 매끄럽다. 우리 부부는 예기치 못했던 중년의 위기를 맞아 삶의 노선이 바뀌었다. 어디를 여행할지가 아닌 어느 병원이 더 좋은지 고민하고, 맛있는 걸 먹는 것보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먹지 않는 노력을 한다. 다행인 것은 남편은 나의 말을 잘 따르고 나는 남편에게 다정하다는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다른 인생경로를 준 것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설마 신이 무작위로 아무렇게나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순명하고 받아들이자. 뭐 그것 말고 별 다른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