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이 공부가 되기도 하고, 방황과 고뇌가 성찰과 각성이 되기도 합니다. 공부 아닌 것이 없고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달팽이도 공부합니다. 지난여름 폭풍 속에서 세찬 비바람 견디며 열심히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공부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말을 멈추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 봅니다.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립니다.
공부는 영혼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처음처럼, 신영복
장마철, 비는 끈적거림을 남기고 가을을 기다리게 할 것이다. 폭풍 같던 봄을 지내고 평온한 여름이다. 제주에서 9년, 다시 부산이다. 그동안 미루었던 숙제를 해가며 오십이 넘은 삶은 다시 자리를 잡아간다.
내 삶의 숙제는 내가 아니라 남편과 그의 어머니였다.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성격이 온화하게 변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뇌의 변화로 인한 성격의 변화였다. 젊을 적 그는 상식을 초월하여 까칠하고 예민했다. 철없던 나는 그를 변화시킬 힘이 내게는 있다고 착각했다. 살아보니 그 까칠함과 예민함,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완벽하려는 성향은 내게 더 적용되었다. 아이들을 평온하게 키우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자 내가 맞추었다. 물론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함께 나이 들어 늙어가고 소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첫 아이를 나으면서 시어머니는 본인의 집과 미혼인 작은 아들을 두고 우리와 함께 27년을 살았다. 본인의 집에 가보려고도 작은 아들을 위한 반찬 만들기조차 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이기적인 할머니라는 요양보호사의 말을 들었을 때 치매검사를 하러 갔다. 하는 행동은 치매지만 점수는 30점 만점에 29점이라 의사는 몇 번이나 점수를 확인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다. 며느리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던 내 욕을 뒤에서는 아무에게나 하다 들켰을 때도 나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사과를 받아주었다. 돈에 대한 비상식적 집착이 늘 있던 터라 치매도 돈과 며느리에 대한 것으로 왔을 때도 그래도 같이 살아보려 했었다.
그러나 내게는 남편이지만 시어머니 본인에게는 아들이자 평생을 남편처럼 돌보아 준 장남이 아픈 것을 남보다 개의치 않았을 때 더 이상 참을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가 우선이었다. 남편은 밤에 이어지는 엄마의 통화를 불안해했다. 며느리인 내 욕을 들리지 않을 거라 착각하고 이어갔다. 설마 했던 내용을 계속 듣다가 어느 밤 왜 일부러 거짓말을 하냐고 묻다가 나는 평정을 잃었다.
치매약 복용 며칠 후, 시어머니는 하루 종일 장롱을 뒤지다 밤에 아픈 아들에게 며느리인 내가 돈을 가져갔다고 했다. 내게 맡아달라 사정한 통장을 이런 일을 예측한 듯 나는 맡지 않고 온 가족이 보는 거실에 두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가져가야만 했던 돈이 통장 그대로 본인의 눈앞에 보이자 몹시 당황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구한 작은 아파트에 작은 아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이사를 시키고 냉장고를 채우며 소용이 없을 긴 이야기를 했다. 시어머니는 무조건 나만 믿는다고 했지만 내 전화도 받지 않는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힘으로 살아낼 것 같은데 누군가가 내가 되었을 뿐이다.
삶에는 책에서 배우지 못한 살아가면서 깨우쳐야 할 진짜 공부가 수두룩하다. 그 공부 중에서 30년 걸린 이 모자와의 공부는 내 청춘과 젊음의 꽃봉오리를 분명 꺾었지만 삶이라는 나무는 아직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단지 제때에 단비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무는 제 발로 움직이지 못한다. 단지 더 나은 곳을 향해 뿌리를 내릴 뿐이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분리가 한 달이 되어간다. 남편은 안정을 찾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지켜본다. 시어머니는 장애인으로 어린 시절 받았던 놀림을 평생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불행한 결혼 생활 중 아들 둘을 낳아 노후를 장남에게 의존하려는 구체적이고 확고한 계획을 세웠다. 키우는 내내 이 계획을 장남에게 각인시켰다. 요즘 말로는 가스라이팅이다. 다만 그의 처인 나만 이 과정을 몰랐을 뿐이다.
인생공부라고 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뺏겼다. 둘이서 살아내야 했던 시간을 셋이서 보내면서 놓친 것이 많다. 하나하나 다시 해보니 신기한 것이 아니라 억울하다. 25년 넘은 소파를 멀쩡하다고 못 바꾸게 했다. 소파 하나 바꾸는 데 걸린 시간도 수저통 하나 버리는 데 걸린 시간도 억울하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잊어버리는 것이 또한 공부라 여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