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고난은 우리를 아프게 쳐서 무릎을 꿇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충격 그 자체보다 우리를 더 좌절하게 하는 것은 고난을 견뎌내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이다. 발밑에서 땅이 흔들리면 우리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맨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두려움에 묶여 꼼짝달싹 못 하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균형을 잃는다.
지진이 나도 버티기 위해서는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안다. 삶에서 매일 일어나는 진동을 피할 수는 없다. 살아 있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경험이 일종의 선물이라 믿는다. 그로 인해 우리는 중력의 새로운 중심점을 찾아 여기저기 발을 디뎌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위가 흔들릴 때 뻣뻣하게 버티며 저항하는 대신, 그러한 경험을 우리의 위치를 바꿀 기회로 여기고 받아들이자.
-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오프라 윈프리 -
2024년 봄, 발밑에서 땅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고 두려움에 잠긴 나의 모습을 마주했다. 여름이 한창인 지금도 울면서 보냈던 그 봄과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치매가 아닌 뇌의 위축,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알코올일 가능성으로 본다고 했다. 초기에 영상과 인지검사 등의 자료를 토대로 초로기 치매라 진행이 빠를 것이라고 예측했고 보이는 것보다 영상에 나타나지 않은 뇌 부분의 위축이 더 심하며 언어의 소실, 판단력과 기억력의 저하 등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을 하셨다. 다행히 뇌 PET CT상으로 베타아밀로이드가 없어 치매가 아니라는 기적 같은 결과가 나왔다.
지금은 더 좋아지거나 나빠진 것 같지 않고 상태는 전과 같지만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져 두려움에 묶여 울며 지냈던 나날에서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예전의 총명함과 예민함 대신 몹시 온화해졌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느리게 생각하고 편한 환경에서는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 예민함이 한 번씩은 보이지만 옆에서 내가 케어를 하면 큰 문제가 없다. 봄에 병원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내리는 역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노력해도 내리는 역을 잊어버렸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의 놀라고 굳은 표정을 보며 마음이 저렸다. 함께 했던 고락의 세월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진짜 가족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사랑이 아닌 더 깊은 보살핌으로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 소소하게 잊어버리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 말수가 적어져서 걱정이지만 내가 더 하면 된다. 하느님께 울며 불며 매달리던 기도도 이제는 눈물 없이 할 수 있다. 억만장자가 되거나 큰 명예나 부를 얻는 것을 탐하지 않을테니 하느님, 저희에게 소소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허락해 주소서.
다시 책을 보는 일상이 너무 감사하다. 봄에는 치매 관련 영상을 공부하느라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최근에 '세상 끝의 카페'라는 책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거창한 질문이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여기 있는 이곳에서 주변에 사람들과 어울리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 죽음은 너무나 두렵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큰 후회가 없도록 노력하고 싶다. 당연히 충만한 삶을 살고 싶지만 큰 명예와 재물과 원대한 목표를 가지기보다 내가 가진 작은 것에 감사하며 신의 선물인 대자연을 감상하며 자연의 섭리와 변화에 더불어 삶이 충만해지고 싶다. 남편의 상태를 하루하루 걱정하기 보다 닥치는 대로 행복하고 즐겁고 단순하게 걱정없이 살아낼 용기가 충만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