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보호자

by 천천히바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특별한 것이 없는 듯하다.

그가 무엇을 하든,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가끔은 스스로를 살펴가면서 살면 좋은 인생이 될 것이다.

특별하게 살고 싶다면, 그 특별한 삶을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 눈과 내 귀라 하여도 믿을 것은 못 된다.

눈은 그저 창과 같아서 보일 뿐이고

귀도 열려 있으니 들릴 뿐이다.

눈과 귀는 보고 듣는 역할을 할 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니 눈과 귀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걷는 곳마다 마음꽃이 피었네 -장산



장산스님의 도보 성찰 여행을 담은 책이다. 걸어서 부석사도 가시고 봉정사도 가신다. 지난달에 다녀온 봉정사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책장을 넘기면서 아는 곳이 나오면 마치 스님을 따라 함께 걷는 느낌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특별한 것이 없는 듯 하지만 중생은 그렇지 않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죽을 때 기억도 못할 사람들의 부질없는 부러움을 받고 싶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면서 스스로를 살펴야 물질의 욕망을 자제할 수 있는 것 같다.


여름이 물러가는 것인지 오늘은 모처럼 바람이 많이 분다. 후덥지근한 바람이지만 에어컨을 끌 수 있어 감사하다. 창 밖의 계수나무는 이미 노란 물이 들어가고 나 또한 오늘 하루만큼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나무는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 어떤 반항이나 혼자 튀고자 하는 헛됨이 없이 이 더운 계절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나도 이제는 서서히 생로병사의 그 순리를 따라야 함을 안다.


몹시 까탈스럽던 남편이 생각지도 못했던 병을 얻으며 순한 양이 되었다. 그와 내가 함께 한 세월의 반 이상을 싸웠는데 미운 정이란 한 마디로 정리되며 아픈 그가 가엾다. 나를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남편을 보면 과거에 우리가 싸웠던 기억은 물러가고 생의 허망함과 연민이 스며 나온다. 우리는 왜 그렇게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치열하게 살았을까? 30년 후의 그의 모습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젊은 날 우리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이다. 현재를 조금 더 기운 내서 즐겁고 재미있고 평온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리라.


때론 감사하고 때론 두려운 생의 한가운데서 그는 내 손을 꼭 잡고 나아간다. 그의 기억은 나의 기억이 되어간다. 어제 간 병원에서 의사는 아픈 남편을 위해 상세하고 친절하게 오랜 시간 설명을 해주었지만 그는 전부 이해를 하지는 못했다. 물론 내가 이해하면 되지만 남편의 긴장이 내게는 전달되었다. 전생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관계였을까? 그가 나에게 몹시 친절을 베풀어 이 생에서 내가 그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려 한다. 나이 들어가는 부부는 서로에게 더 이상 연인이 아니라 보호자가 된다. 나는 그에게 든든하고 푸근하고 유쾌한 보호자가 되려 한다. 삶은 참 다이내믹하다. 나는 남편이 나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길 원했는데 그 반대가 되었다. 삶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고 인간은 생의 순리에 절대 맞서면 안 되나 보다.


나는 그의 유쾌한 보호자가 되려 한다. 슬픔보다는 기쁨과 쾌활, 감사를 함께 즐기는 삶의 동반자가 또 다른 나의 삶의 목표가 되어간다. 오늘도 태양은 뜨겁고 여름은 그 절정을 이루지만 곧 가을은 소리 없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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