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by 천천히바람

가끔 불자들은 "적멸보궁이 무슨 뜻입니까?"하고 묻는다. 적멸이란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열반)이다. 열반이란 불타는 번뇌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등잔불의 기름이 다 타고 등불의 심지까지 말라버려 더 이상 탈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번뇌가 사라진 완전한 평화를 말한다.


"눈에 졸음이 없으면 모든 꿈은 저절로 없어진다." 승찬대사의 말이다. 인생은 꿈의 연장이라고도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꿈속에서 산다는 뜻이다. 삶이란 꿈속의 꿈이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인간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꿈이 아름다우면 어떨까.


세상일이란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나 역시 계획한 것만큼 이뤄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럴 때는 계획을 세우고 다시 시작한다.

마음도 꼭 믿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 걷는 곳마다 마음꽃이 피었네, 장산 -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나의 노후는 평안할 것이라고.

내 삶과 주변은 무탈하고 심심하면서 평온하리라고 굳건히 생각했다.

근거는 없지만 무작정 의심의 여지없이 확고하게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고 있는 중이다. 내 몸인데 내 몸속에 있는 장기의 상태를 나는 모른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을 잘 쓰다가 50 전후로 여기저기 고장이 났다. 좋다는 병원을 다니며 못 고치는 건 의사의 실력이 없어서라고 여기고 나의 늙음과 병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회피한 것 같다. 지인들이 하나둘 병마에 시달리고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에도 다 남의 일로 여겼다. 그러나 예고도 없이 물론 약간의 예고는 있었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닌 내 남편의 일이 되자 회피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나라는 인간의 나약함과 무능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인생의 사계도 생로병사로 귀결이 되는 것이 이치일 것인데 아직 늙어가는 단계이지 병사는 멀었는데 왜 아파야 하는지 억울하고 무섭다.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흘렀다. 병원은 파업 중이고 예약은 어렵고 의사 선생님의 사소한 친절에도 눈물이 났다. 자신만만하던 대한민국 아줌마의 태도는 어디로 가버리고 나는 겁쟁이가 되어간다.


가톨릭신자이지만 불교는 익숙하고 가깝고 다정하다. 열린 성당의 문은 아무나 들어가기 좀 그렇지만 절마당은 아무나 들어가도 부담이 없다. 남편을 태우고 근교의 절로 산보를 가면 꼭 절마당을 지나 대웅전까지 가서 부처님의 대자대비에 기댄다. 하느님과 부처님의 자비심에 기대며 내가 그를 위해 내리는 선택이 어리석지 않기를 기도했다. 어느 병원을 가는 게 맞는지 의사의 말이 다를 때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아주 사소한 판단조차 흔들렸다. 밀양 만어사 마당에 발을 내딛자마자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던 눈물로 같이 갔던 이들이 불편해할까 대웅전 뒤에서 한참을 참았으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처님이 나를 가엾게 여기시는 것이 아닌지 의아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다 타고 등불의 심지까지 말라버려 더 이상 탈 것이 없는 상태를 적멸이라고 했다. 부처님도 인간이 불쌍하시면 좀 봐주시지. 더 이상 탈 것이 없는 상태까지 몰아붙이면 가엾은 대중은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삶이 꿈속의 꿈이라고 하면 그 꿈이 조금은 행복하면 안 될까? 기껏해야 삶이 꿈이라면 꿈도 그렇게 탈 것이 없는 상태까지 몰아붙여야 하는지 무지한 대중은 의문과 원망이 뒤섞인다. 지인들이 아프거나 지인들의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지금의 내 나이에는 아픈 사람이 많다. 젊을 때는 우아하고 편안한 노년을 위해 즐기지도 못하고 돈도 무조건 아껴야 한다고 쓰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더 열심히 살면 안 된다. 하늘도 보고 무료하고 심심하고 즐겁고 여유 있게 살아야 10년 뒤에 후회가 덜 할 것이다.


젊었을 적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노년은 길고 즐길 일이 많으니 그때를 위해 돈을 모으고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나이가 들면 아플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나와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우아하게 즐길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확률은 왜 뺐을까?

내가 확실히 아는 건 지금 한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정말 나중에 일어날 일은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확실한 지금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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