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돼?

by 천천히바람

"그런데 말이오, 사기를 쓴 역사학자 사마천 알지요?"

전대광이 술안주를 집으며 물었다."

"예, 압니다."

"그 사람이 기원전, 그러니까 2,100년쯤 전 사람인데, 사기에 다 돈과 인간의 심리에 대해 아주 기막히고 절묘한 표현을 했소. 자기보다 10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100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1,000배 부자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10,000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 이게 어디 2,100년 전 분석 같소? 어떤 예리한 심리학자가 오늘날의 인간 심리를 갈파한 거지. 사마천이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탁월한 인물이니까 그렇게 예리하게 갈파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때 이미 중국은 돈이 인간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었는지, 돈이 인간사회에서 얼마나 큰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는지 정치제도는 봉건주의였지만 경제구조는 그때 이미 자본주의 형태였다는 것 등을 두루두루 확인하게 해주고 있소. 중국사람들과 돈, 그 상관관계는 이렇게 뿌리가 깊소."


- 정글만리, 조정래 -



IMF때 예금금리가 20%인 개발신탁이라는 예금상품이 있었다. 당시 아파트 담보대출 이자도 급격하게 올라가 월급날 아침에 들어온 돈이 오후가 되면 없어졌다. 그때의 그 막막함,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티던 그때 5억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5억에 20%면 일년에 이자만 1억이니 반은 저금하고 반은 돈 걱정 없이 집에서 아이들 돌보며 직접 키우고 싶었다.


그 힘든 시기를 겨우겨우 버텨내고 2014년 경에 퇴직금을 받고 명퇴를 하니 정기예금 이자가 2%가 되어버렸다. 5억이 있어도 1년에 천만원 정도 이자만 나왔다. 그리고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간이 큰 사람들은 낮은 대출금리를 활용하여 아파트를 사기 시작했지만 대출이자에 시달려 본 나는 그러지 않았다. 돈이 움직이는 방향에 편승하지 못했다. 돈을 잘 몰랐고 더 정확한 이유는 혹시나 한 푼이라도 잃을까 막연히 두려웠기 때문에 더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돈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는 참 많고 다들 돈에 대해 얘기하기를 주저한다.


남편도 퇴직을 하고 아이들도 학교를 졸업했다. 큰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한 소비로 무난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돈은 더 가지고 싶다. 얼마를 더 가져야 불안하지 않을까? 그러던 차에 사마천의 돈에 대한 머리에 쏙 박히는 정의를 접하게 되었다.


자기보다 10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100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1,000배 부자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10,000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


강남 부동산에 붙어있는 20억이 넘는 아파트 가격을 보면 살 형편도 안되지만 굳이 아는 사람도 없는 거기서 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직장이 서울인 아이 입에서 강남아파트는 자기 형편으로는 앞으로도 쭉 살 수가 없는 곳이란 말을 듣고 괜히 안쓰러웠다. IMF때 간절히 바랐던 5억이 이제 충분한 양이 아니지만 살다 보니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강이었다. 직접 건강을 잃고, 나이를 먹으면서 아무리 수명이 길어져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먹음직스럽고 비싸고 좋은 음식도 세끼 이상은 무리다.


소소한 행복, 자제하는 삶이 행복임을 늘 되새긴다. 이건 나를 위한 위안도 변명도 아니고 그냥 사실이다. 욕심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자기만족을 모르면 오천억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 것이다. 7,80년대 코트가 한 벌이어도 겨울을 지냈고, 여름에 에어컨이 없어도 견뎠다. 물론 지금은 에어컨도 필요하고 코트도 더 필요하지만 마음만은 단벌이었던 적을 기억해야 한다. 황금의 허망함은 미다스왕이 일깨워 주었다.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쓰지 못해도 시간과 죽음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저 오늘 내게 허락된 그 시간에 단 돈 만원이라도 즐겁고 알차게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현명하다.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것이 돈이다. 돈은 소금물이다. 먹을수록 더 갈증을 일으킨다. 이제는 자연을 보고 순리를 배워야 하는 나이이다. 5억이든 5천억이든 그건 어차피 갈증을 일으킨다. 내 주머니가 아닌 내 가슴이 꽉 찬 나날이 되도록 노력하자. 하지만 나는 적당한 돈은 사랑한다. 단 적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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