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용도

by 천천히바람

슬픔의 용도는 뭘까?

기쁨은 나를 활기차게 하고

분노는 나를 보호해 주고

공포는 나를 지켜주고

그런데 슬픔은...

나약하고 무기력한 모습에 주변 분위기까지 침울하게 만듭니다.

슬픔을 느낄 때, 우리는 목이 메고 침울해지며 마음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듭니다. 또한, 슬픔은 슬픈 기억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욱 감정이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슬픈 상태의 사람은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래에 역시 부정적이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죠. 얼핏 보기에 삶에 악영향만 끼치는 것 같은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가 똑같이 타고나는 기본 감정인데요.


슬픔은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정서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슬픔이 소중한 대상을 잃어버리거나 또는 목표로부터 단절되거나 혹은 불쾌한 상태를 피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질 때 생겨난다고 말합니다.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으며, 상황을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슬픔을 경험합니다.


그렇다면 슬픔은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슬픔은 상실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슬픔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이를 통해 상실의 아픔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건설적인 시간을 가지기도 하죠. 더불어 슬픔은 타인의 도움을 유발하고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 어떤 감정보다 슬픔을 공유했을 때, 사람들은 깊은 감정적인 유대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슬픔을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함으로써 유대감을 가지고 관계와 집단이 좀 더 강해질 수 있죠.


-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나에게, 이소라 -



책은 슬픔의 필요에 대한 정의를 해놓았지만 솔직히 크게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슬픔은 어떤 뚜렷한 이유나 원인이나 목적도 없이 그냥 슬픈 것이다. 유아기의 양육상태에 기인한 것인지, 유전인지 엄마와 나는 슬픔에 대한 공감이 과하다. 슬픈 드라마에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우는 모습에도, 심지어 유치원 졸업식에서도 눈물이 난다. 주책맞고 창피스럽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 공감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공감능력이 슬픔에만 과하게 집중된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버지 장례식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염을 하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했을 때도 굳어진 아버지의 시신을 보고 놀란 마음이 더 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픈 아버지가 몹시 가여웠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키도 180이 넘는 미남이었지만 건강이 나빠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본인이 똑똑하다 생각해서 의사의 처방 없이 본인 뜻대로 약을 드시다 내성이 생겼다고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치료비가 겁이 나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아서 병을 키운 것이다.


요양원에서 지내시다 아버지가 원해서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 처음에는 별 일이 아니었다. 병문안 가서도 곧 퇴원하실 것 같았는데 갑자기 합병증이 오며 증세가 악화되었다. 아버지의 혀는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얼음만 찾고 음식은 드시지 못했다. 그러나 정신은 멀쩡하셔서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셨다. 뭘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몰랐다.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앳된 여의사가 얼음물을 주지 말라고 하여 참으시라고 했던 것이 후회된다. 아버지에게서 삶의 기운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의사의 말을 들으면 아닌 줄 알면서도 혹여 회복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어리석었다. 아버지가 원했던 것은 타들어가는 속을 식혀 줄 시원한 얼음물이었는데 그것 조차도 해드리지 못했다. 간병에 지친 엄마와 사회초년생인 오빠와 임신 중인 나는 모두 여유가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날은 일요일이었다. 내일 출근을 위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저녁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몇 시간 후 돌아가셨다. 다시 기차를 타고 이제는 병원 영안실로 갔다.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늘 편찮으셨던 아버지가 정말로 돌아가셨지만 슬픔과 애도의 시간보다 살아있는 우리 가족 삶이 더 위태로워서였을까? 그때 나는 슬픔도 공포도 두려움도 아닌 무감각 상태였다. 내가 아버지를 위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이제는 없었다. 그저 살아있는 자들이 오는 문상을 구경하는 마음이었다. 살아있는 우리는 때마다 밥을 먹었고 부조금을 정리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근황을 들었고 서로에게 화가 났다.


슬픔에 과한 공감을 하며 주룩주룩 잘 우는 내가 그때는 왜 울지 않았을까? 무감각했던 당시의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거나 알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야 찬찬히 생각해 보면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아픈 아버지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몹시 두려워 잘 알려고도 뭔가를 준비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턱대고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피하고 도망쳤다.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면서도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란 예감을 가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인연에는 그 기한이 있고 신이 행하는 일을 사람이 다 알 수 없음을 차츰차츰 포기하듯 받아들인다. 하늘에서 내 아버지는 아프지 않고 즐거울 것이다. 선했고 몹시도 내게 다정했던 아버지와의 인연은 27년 만에 끝이 났지만 거기까지가 우리에게 정해진 시간이었던 것이다.


슬픔의 용도는 없다. 그냥 어찌할 수 없이 저절로 생기는 감정이다. 슬퍼서 운다고 주변에서 오래 공감하며 도와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작은 마음조각을 아주 잠시 내어 줄 뿐 내 고통과 슬픔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나도 어찌할 수 없어 생기는 감정이 슬픔이다. 들여다보면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모두 정확히 알아내기는 힘들다. 아버지가 가여워서 슬픈지, 못 해 드린 것이 후회스러워서 그런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실은 내 걱정이 앞서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 살아보니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삶인 것 같아요. 행복하려고 했던 모든 노력이 병과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부디 그곳에서 매 순간 행복하시고 또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친구도 많이 만나시고 걱정 없이 두루두루 아름다운 좋은 세상 편히 유람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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