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직장에서 안 사람들은 직장 떠나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직장생활이란 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 제각기 다른 역에서 내려 뿔뿔이 흩어져 가는 열차놀이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베이징으로 가서 중국을 떠날 것이다. 퇴직한 다음에 그는 무언가 할 일을 정했을까. 아직 반년이 남았으니까 급할 건 없다. 그런데, 남자에게 퇴직이란 무엇인가. 거기엔 상반된 의견이 맞서 있다. 퇴물, 퇴출, 소외, 그와 반대로 제2의 인생, 창조적 휴식기, 진정한 자기 대접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였다.
김현곤은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뒤돌아보지 않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간 지사장의 모습은 머지않아 겪게 될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퇴직 후의 인생에 대해 온전한 대비를 할 수 있을까? 퇴직이라는 말 앞에서 서글픔이 앞설 뿐 스스로를 건강하게 부축할 수 있는 그 어떤 방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 정글만리, 조정래 -
직장 생활을 열차놀이라고 표현한 작가의 예리함에 깜짝 놀랐다. 시절 인연들은 각자의 역에서 내려 이제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연락을 할 만큼 보고 싶지도 않고 굳이 끊어진 인연을 이어갈 만큼 과거가 돈독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직장이라는 열차에 타고 있었을 때, 사회생활에 서툴어 쪽수로라도 밀리지 않으려고 서로 같은 편을 맺어 동맹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지금도 연락을 하며 서로의 건강과 경조사를 챙기는 직장 지인들은 같은 역에 내린 사람들이다. 내린 방향이 같고 생각하는 것도 사는 형편도 비슷해서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여전히 한편을 먹고 나이도 먹고 있다. 퇴직 후 인생에도 쪽수는 유효하다.
퇴직 후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를 포함한 지인들은 퇴직 후 몇 달도 제대로 놀지 못하고 당황하고 방황했다. 장사를 하려니 퇴직금을 까먹을까 걱정이 되었고, 눈을 낮춰 어디라도 취직을 하려니 자리가 없었다. 공공기관에서 시켜주는 교육을 받아보니 처음에는 뭔가 될 듯 하지만 자꾸 받다 보면 내용은 비슷했다. 여행도 하루이틀이고 취미생활도 딱히 즐겁지 않았다.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안다고 돈벌이를 하지 않으면서 취미생활을 하니 하루가 길었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특히 모임이나 규칙적인 집안일이 없는 남자들은 더 심하게 현타가 왔다.
그러나, 놀다 보니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그 잔잔한 즐거움과 소소하게 노는 요령이 축적되며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왜 꼭 직업을 가지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돈을 벌어야만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기는지 서서히 의문이 들었다. 물질이 아닌 것으로도 충분히 나를 대접할 수 있었다. 나에게 여유를 허락하는 것이 잘못된 삶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잘 늙어가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외식보다 직접 장을 보고 만들어 먹고 나누어 먹는다. 차로 다니던 길을 여유롭게 걸으면서 아픈 남편과 동네구경을 한다. 자주 집안을 정리하면서 여전히 버리지 못한 많은 물건 속에서 지나간 추억을 찬찬히 들추다 보면 내 아이들의 어린 옛 모습이 떠오른다. 돈을 번다고 저 어린애들을 떼놓고 야근에 회식까지 하고 왔었다. 돈으로 해주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오직 돈을 좇아 애들이 크는 모습을 여유롭게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겠다. 너무 미안하다. 돈을 번다고 당당했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가엾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나를 대접해야겠다. 애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나 혼자 가지고 있다. 다 커버린 애들은 엄마의 마음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이 각자의 삶에 예전의 나처럼 이유 없이 당당하고 바쁘다. 엄마 삶은 엄마가 알아서 잘 살아주는 것이 그들을 도와주는 길이다. 그들의 찬란한 청춘과 젊음에 결코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
두 다리가 성할 때 봄과 가을을 즐길 것이다. 두 눈이 허락할 때까지 책을 읽고 정리할 것이다. 두 손이 허락하는 한 음식을 만들고 주변을 정리하고 사람들의 손을 맞잡을 것이다.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은 명품백도 비싼 아파트도 아니었다. 나는 소소하고 작게 자주 행복하고 싶다. 친구의 이야기를 시간에 쫓기지 않고 듣고 공감해 주고 싶다. 혹여 모르는 아이가 웃으며 지나가면 더 여유롭게 웃어주고 칭찬해주고 싶다. 시간에 쫓기며 해야할 일을 여기저기 붙여두고 생활했던 날들에서 이제는 하루에 일정이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여유를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 지금은 멋모르고 열심히 요령없이 산 젊은 날의 나를 위로하고 진정으로 나를 대접하는 시기이다. 누구도 진정한 관심이 없는 내 삶에 나는 나를 잘 보고 잘 들어야 한다. 그게 맞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