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인지장애
- 걷는 곳마다 마음꽃이 피었네, 장산 -
속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사람을 지음자라고 했다. 내 속마음을 온전히 숨기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아픈 남편과 서울 병원을 찾았을 때, 도저히 혼자서 그 막막함을 감당하지 못해 경기도에서 운전도 서툰 친구가 온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다. 그때는 미안함도 느끼지 못했다. 물론 친구가 같은 상황이면 나도 그렇게 할 것이지만 체면을 차릴 여력도 그때는 없었다. 혼자서 감당하기가 두려웠다.
전날 간 대학병원보다 더 나쁜 의사의 소견을 듣고 나는 진료실에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대로 진료가 끝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두고 친구는 남편을 챙겨 진료실을 나갔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막막함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슬픔에 가득 찬 내 얼굴을 친구는 바라보지 못했다. 그날을 생각하면 시간이 지나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의사는 MRI에 보이지 않는 곳의 뇌위축은 더 심하며 병의 진행은 빠를 것이라고 했다. 전날 간 병원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지만 의사는 안타까움과 연민이 있었고 PET CT와 다른 추가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병을 진단하겠다고 했다. 한 군데 더 확인하자는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온 이 병원에서 의사는 의료대란과 넘쳐나는 환자로 인해 무척 피곤해 보였다. 위로의 눈빛이나 따스한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고 하지만 보호자에게는 위로가 된다.
정신줄을 놓은 나를 대신해 병원로비에서 친구는 몇 가지를 정리했다. 우선 보호자인 내가 마음을 다잡아야 환자가 편안하게 의지한다며 정신을 차리라고 주의를 주었다. 다음으로 병원을 선택하고, 그 이후에는 미련 없이 선택한 병원의 처방과 추가검사만 따르자고 했다. 우리는 전날 진료를 본 병원을 선택하기로 했다. 쓸 수 있는 특별한 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의사가 보호자의 얘기를 경청해야 상태를 정확히 확인한다. 환자가족과 신뢰를 가지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와는 진료시간 몇 분 보는 것이 전부이지만 보호자는 온종일 같이 지내다 보니 보호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빨리 집에 가서 쉬는 것이 최선이니 어서 기차역으로 출발하라고 했다. 그녀가 시킨 대로 우리는 퇴근길의 붐비는 수서역으로 향했다. 그녀는 뒤에서 넋을 놓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는 나를 대신해 자신의 역할을 했고 택시를 탄 우리를 보고서야 본인의 안타까움을 마주하고 있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보통의 사람인 나는 혼자서 이 막막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따스함과 온기를 느끼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살고 싶다. 삶에서 감당 못할 일이 일어나면 나 자신의 한계와 나란 존재의 허약함이 아주 잘 보인다. 수서역에서 퇴근한 딸의 배웅을 받으며 각자의 눈물을 억지로 삼키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아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 울었다. 친구는 우리가 부산에 도착한 것도 확인하고, 다음날 일어나서 밥을 먹으라고 전화하고, 온라인으로 장을 봐서 집으로 보냈다. 삶의 순서를 가르치듯 하나하나 확인시켜 주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나는 그 시간을 견뎠다.
한 달이 지나고 PET CT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진단명이 내려졌을 때, 최악을 생각했던 우리는 최악을 면했다. 그때 친구는 나아진다는 기대보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에 감사하자고 바른말로 나를 격려했다. 지금 나는 밤에 잠을 잘 수 있다. 새벽에 깨서 잠을 잘 수 없었던 그 시간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던 눈물들, 그 모든 것을 뒤로 두고 싶지만 현재도 여전히 갑자기 불안하고 막막하고 우울해진다. 자신이 없어지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여전히 친구를 찾는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나에게 일침을 가한다. 최악은 면했으니 차근차근 조바심 내지 말고 하루를 살자고. 오늘도 여전히 우울하고 막막했지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지 못하는 나는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는 글로 나를 격려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