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쟁이랍니다

경도인지장애

by 천천히바람

아내의 긴 투병 생활을 함께 하면서, 저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돌보려면 먼저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보호자고 병간호를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아내를 돕고 나 자신을 돕기 위해, 저는 오랜 투병 기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절망감을 극복해 낼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인생에서 가장 절실한 과제였어요. 그리고 결국은 찾아냈습니다. 그 모든 걸 진정시키는 기술을 발견한 겁니다.


그것은 바로 불교의 명상법이었습니다.


- <오래된 질문 >중 부작용 없는 치료약, 명상 -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생각이 점점 불안으로 바뀌고 불안은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다른 병원에 더 가봐야 하나? 용한 한의원으로 가야 하나?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될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나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를 지지하고 격려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아프면 남편은 누가 돌볼까?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생각들이 머리를 지배한다. 나는 겁쟁이가 맞다. 그럼 남은 시간도 겁쟁이로 살 확률이 높다. 따라서 겁쟁이는 인정하지만 더 심한 겁쟁이가 되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


눈을 뜨면 살이 있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슬프다. 이전의 날들은 마치 꿈속의 일들인 것 같다. 분명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애들 키우고 직장 다니며 살아내느라 애를 썼던 날들이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순간의 감정만 남는다. 외국여행을 갔을 때 거기가 어딘지 장소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기나 저기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언제인지 모르지만 직장 생활하다 모처럼 평일 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면 낮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것을 보고 놀랐던 일, 아이들 어릴 적 모처럼 학교 정문 앞에 서 있으면 하교하다 미친 듯이 반갑게 웃으며 달려와 안기던 그 순간들, 살아내느라 그런 사소한 것들이 이제야 소중하게,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돈 걱정 없이 살려고 맞벌이에 야근에 주말까지 회사일에 열중했다.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회사걱정을 하며 사소한 일에 정말 목숨 빼고 다 걸은 것 같다.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이라더니 딱 내 얘기다. 요즘 신세대들은 얼마나 똑똑한가? 조용히 퇴직하고 할 만큼만 일하고 퇴근 후의 시간은 자기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회사는 내가 돌보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고 나와 같은 부속품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었다. 너무 쓸데없이 남의 회사일에 최선을 다했다. 비슷한 세대에 나만 그런 바보는 아니었나보다.


<중년내공>의 일부를 인용한다.


"쉬는 날 되면 쉴 줄도 모르고, 놀러 갈 줄도 모르고, 어디 맛있는 곳이 있는지도 안 가보니까 모르지요. 일 있을 때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벌어놓자, 그러다 보니 어느새 청춘이 다 지나가고 돌이켜보면 벌써 사오십, 나중에 좋은 날이 오면 즐겁게 재미있게 살겠지 그랬는데, 그날이 없네요. 항상 부족하고 힘들고, 살아가는 게 너무 재미없이 살아가요. 매일 특근, 잔업, 야간근무 이렇게 살다 보니 언제 봄이 오는지 언제 여름이 가는지 몰라요"


퇴직하고 건강과 적당한 돈만 있으면 무조건 행복해지는 걸로 착각했다. 놀아본 사람이 잘 노는 법이다. 걱정만 하다 보면 젊은 날의 실수를 반복한다. 이제는 일 근육이 아닌 쉼 근육을 키워야 한다. 쉬어야 일도 하고 건강도 지킨다. 논다는 것은 시간 가는 것이 아깝지 않고 또 해도 편한 것이다. 놀 때 놀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지 말자. 걱정만 하다 좋았던 순간을 놓치는 것은 젊은 날 충분히 했다. IMF때도 살아남았다. 물론 겁쟁이인 나는 남편과 매일 싸우며 혹시 퇴사당할까, 대출이자를 못 낼까 겁을 있는 대로 먹고 마음을 졸였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만 물어오더라. 겁쟁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대책을 세워보자.


- 너 어쩔래?

- 나? 몰라, 인생은 다 그런 거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그만 생각하려고. 이제 날도 시원해지는데 가을바람 맞으며 좀 쿨해지려고.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나에겐 명상이야. 명상을 좀 하니까 나아지는 것 같아.

- 잘될까?

- 모르지. 그러니까 온 우주야, 나 좀 도와주라. 부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