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땅 위에 혼자다,
햇살에 붙들린 채로.
그리고 벌써 저녁이다!
- 살바토르 콰시모 -
우리 집은 해운대해수욕장과 송정해수욕장 가운데 있다. 남편과 나는 덜 붐비는 곳으로 거의 매일 산책을 다닌다. 여름엔 송정이 해운대보다는 덜 붐비지만 근래에는 여기도 관광객이 엄청 몰려온다. 그래서 더 동쪽인 기장, 일광, 칠암까지 나가는데 이곳의 개발속도도 장난이 아니다. 동부산롯데아울렛, 이케아, 아난티, 반얀트리 등 2002년 이사 올 때만 해도 기장으로 가면 시골 느낌이 나서 나들이 가기 정겨웠다. 지금은 무슨 건물이 올라가는지 늘 공사 중이다. 인구는 줄어든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땅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지 신기하다.
어릴 적부터 공간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딱 붙어있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사람이 적고 한적한 곳이 편해서 일부러 그런 장소를 찾았다. 도서관이나 대중교통도 항상 구석진 곳이 편했다. 식당이나 카페도 공간이 확보된 곳이 좋다. 넓음이 아니라 안정, 안전거리가 확보되는 것을 강력하게 원한다. 여중과 여고에서 친구들은 팔짱을 끼고 화장실도 같이 다녔고 귓속말을 하면서 서로의 친밀감을 다지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가 체육복 갈아입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귀찮았고 이동수업을 하며 교실을 옮길 때도 내 속도로 가는 것이 편했다. 그렇다고 늘 혼자가 편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인생의 후반기로 갈수록 선택이 아닌 필수로 혼자 있기에 달인이 되어야만 한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아프다는 소리를 요즘은 부쩍 자주 듣는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우리가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을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다. 차 한잔 나누며 우리 얘기, 건너 건너 지인들의 얘기를 편하게 나눌 수도 없다. 앞에서 얘기하든 뒤에서 얘기하든 헤어지는 발걸음이 편하고 다음번 약속도 편안한 그런 만남의 인연들이 몸이 아파 끊어지는 그런 날은 마음이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게 허전하고 외롭다.
인생은 배 한 척에 나를 태워둔 것 같다. 망망대해를 출항할 때는 같은 배에 탔던 사람들도 구경하고 친해지고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내 무리를 만들어 뭔가 좀 안정이 되었다 싶으면 폭풍도 불고 어느 항구에서 사람들은 내려 버린다. 어디서 내리는지도 모른 채 나는 여전히 배에 타서 항로도 모르고 종착지도 정확히 모른 채 비바람만 지나길 기다린다. 잠시 부는 바람과 햇살에 또 위로를 찾지만 어딘가에서는 이 배에서 나도 분명 내려지겠지. 아버지도 그리 가셨고 친구도 그리 하늘로 돌아갔다.
모처럼 비가 내리는 늦여름이다. 먹구름과 천둥을 잔뜩 몰고 온 이 비가 그치면 조금 더 기운을 내서 혼자서도 씩씩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매의 눈으로 버릴 것을 정리하고 당황하지 말고 마지막 순간이 오면 조금만 아쉬울 수 있도록 물건도 마음도 인간관계도 차분히 정리해야 한다. 늙음과 죽음은 나를 비켜가지 않는다. 이미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자. 현명하게 할 수 있을 때 서서히 공부를 하자. 그리고 오늘 하루는 즐겁고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지는 말고 편하게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