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쓸쓸하게 사라져 가고 있구나

by 천천히바람

나의 행동과 삶은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아무런 결실도 없이 그냥 쓸쓸하게 사라져 가고 있구나.'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땔나무를 아낄 요량으로 식사를 마치고 평상시처럼 겨울 산책을 하고 온 후였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 속에서 두 시간 가량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벽난로에 불을 피우면서 생각했다.


'베를린 아니면 미국에 있거나 이미 오래전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나는 또다시 이곳에 앉아 있다. 나의 행동과 삶은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아무런 결실도 없이 그냥 쓸쓸하게 사라져 가고 있구나.'


-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


'나의 행동과 삶은 아무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아무런 결실도 없이 그냥 쓸쓸하게 사라져 가고 있구나.'


노벨상을 수상하고 데미안과 같은 걸작을 남긴 위대한 작가 헤르만 헤세가 한 말이다. 누군가를 간병하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느닷없이 내 삶은 허탈하고 가치가 없게 느껴진다. 특별한 재주도, 오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곳도 없으면서도 간병만 아니면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 노년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무척이나 많다. 대단한 직장을 다닌 것도 아니면서 때려치워야지 하던 그 직장을 막상 그만두면 허탈하다. 서서히 생의 불꽃도 사그라든다.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삶의 여유시간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면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면서도 사회적으로 효용이 없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뒷방 늙은이가 되어 내 삶의 주도권을 놓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초조함을 불러일으킨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고, 노는 것도 놀아 본 사람이 잘 놀고, 여행도 다녀 본 사람이 즐기는 것이다. 여행은 준비하는 시간만 반짝 즐겁고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었다. 늙지도 더 이상 젊지도 않은 나이에 오늘과 내일이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매일 감사하며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무료하고 무탈한 하루를 정말로 간절히 바라지만 변덕이 심한 인간이라 조금 더 생기있는 하루를 꿈꾸는 것은 욕심일까?


아침에 눈을 떠 스스로에게 삶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뛰어난 작가가 저녁에 답을 주었다. 삶이란 역시 쓸쓸하게 사려져 가는 것이라고. 일기를 쓰듯이 내게 다짐한다. 삶은 대단히 재미있고 신나는 것이 아니다. 삶은 견디고 살아내야 하고 쓸쓸하게 사라져 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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