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한 민족 전체의 가장 힘든 해에
가장 힘든 계절의 가장 힘든 시간에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빈민 구호소를 떠났다.
그는 걸어서, 둘 다 걸어서, 북쪽을 향했다.
그녀는 너무 오래 굶어 열이 났고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들어 등에 업었다.
그렇게 서쪽으로, 서쪽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걸었다.
밤이 내리고 얼어붙은 별 아래 도착할 때까지.
아침에 그들 둘 다 죽은 채 발견되었다.
추위 속에서, 굶주림 속에서, 역사의 부조리 속에서.
그러나 그녀의 두 발은 그의 가슴뼈에 대어져 있었다.
그의 살의 마지막 온기가
그녀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어떤 낭만적인 연애시도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여유로움에서 풍겨 나는 우아함과 육체적 관능에 대한
어설픈 찬미를 위한 자리는 여기에 없다.
단지 이 무자비한 목록을 위한 시간만이 있을 뿐.
1847년 겨울 두 사람의 죽음
또한 그들이 겪은 고통, 그들이 살았던 방식
그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있는 것
암흑 속에서 가장 잘 증명될 수 있는 것
- 이반 볼랜드 -
1845년부터 7년간 이어진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으로 240만 명이 죽거나 다른 나라로 향했다고 한다. 이 시는 그 시기에 일어난 실존 인물의 이야기로 패더 오페어 신부의 자서전 <나의 이야기>에 나온다고 한다. 안에게는 굶주림과 추위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절절한 사랑의 연애 시가 아닌 반성의 계기가 되는 시이다.
지금은 먹을 것, 입을 것 등이 풍족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부족하다. 그럼에도 늘 하루하루의 고민과 불만과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 시를 읽다 당연하게 여기는 이 풍요로움이 없어져 당장 먹을 양식도, 추위를 없앨 것도 없는 막막함이 닥치면 내가 가진 이 불만이 얼마나 하찮을지 알게 되었다. 7,80년대 궁핍했던 시기의 기억이 떠오른다. 줄 서서 수돗물 받으러 갔던 기억, 연탄불 갈러 일어나는 엄마뒤로 들어오던 찬바람, 반찬이라곤 늘 김장김치가 메인이었다. 그 시절 그래도 행복했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시대의 물질적 풍요를 뒤로 하고 굳이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호랑이와 장미가 큼지막하게 그려졌던 담요의 정전기, 화장실에 가려면 춥든지 비가 오든지 집 밖을 나가야 했다. 물이 귀해 빨래하는 엄마를 따라 개울에 간 적도 있다. 여름밤에 그 개울가에 더위를 피해 목욕을 하던 어른들, 구멍 난 고무장갑도 고무줄로 묶어 다시 사용했고 낡은 옷은 행주와 걸레의 순서로 재활용되었다.
지금은 많이 먹으면 큰일이 나는 듯 호들갑이지만 그때는 큰 밥그릇 가득 밥을 먹었다. 그래도 살이 찌지 않았다. 지금 나는 삶에 대해 대단히 경건한 것도 아니면서 내게 주어진 것은 당연히 받고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에만 집중했다. 크게 반성할 일이다. 이 겨울아침에 일어나 물이 없다면 물을 길러 가느라 고생이라 오직 물만 있으면 감사했을 것이고, 쌀이 있어 밥 먹을 수 있음에 감사했을 것이다. 가진 것을 빼앗기기 전에 공손하게 삶에 감사해야 마땅하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이 부부가 가장 추운 계절에 북쪽으로 걸어갈 때 만약 지금의 내 집이 그 어딘가에 있었다면 온 정성을 다해 그들에게 온기와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 정신줄을 놓은 채 그 길을 걸었을 부부에게 따뜻한 물로 목을 축이게 하고 언 몸을 감싸주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부터 대접하고 싶다. 그때 내민 손길은 주고받는 서로에게 축복이다. 난방과 가볍고 따듯한 옷 덕분인지 예전처럼 춥지 않다고 느끼는 2025년 1월에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함을 가르쳐준 소중한 시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