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
나는 만만한 사람인 것 같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조금 속내를 들키면 나는 잘 활용당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정의롭고 착하게 살려고 했다. 왜 그랬을까? 학창 시절에도 직장생활에서도 불쌍해 보이면 그냥 지나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몇몇은 정말 불쌍하지 않았고 굳이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집에서 흔치 않은 생일파티가 있었다. 80년대 동네에는 우리가 놀 만한 곳이 딱히 없었다. 생일밥을 먹고 나서 이 골목 저 골목을 쏘다니는데 어느 집에서 경찰이 나오고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한 소년이 장애인인 누나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미수에 그쳤고 부모님은 일하러 가셔서 집에는 두 오누이뿐이었다고 했다. 경찰이 가고 이웃들도 사라지자 친구들은 금방 흥미를 잃고 어느 골목으로 사라졌으나 나는 나보다 어린 그 남학생을 홀로 두고 갈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흥분상태였고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씩씩대고 있었다. 그 아이를 달래줄 어른이 아무도 없어 어린 내가 나보다 더 어린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누나만 없으면 부모님이 덜 고생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랬다고 얘기를 하며 차츰 진정을 찾았고 나는 다시 그러지 말라는 어른스러운 말로 아이를 타이르고 약속까지 받고서야 그 집을 떠났다. 누군가가 그 아이 옆에 있어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물론 만만해서 활용당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본성에서 우러나와 그리하였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며 특히 몇몇은 그중에 더 이기적이었고 굳이 그걸 숨기려 하지 않았다. 감추는 법조차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은 사람에 따라 태도를 달리 했다. 본인에게 유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고 저들만 특이한 줄 알았으나 그 이기심을 잘 감춘 채 더 이기적인 사람들을 살면서 겪다 보니 성악설이 더 맞는 것 같다.
또한 환경에 따라서 인간은 변한다. 학교 다닐 때 정말 착했던 친구가 어느 순간부터 명품을 사기 시작하며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관계도 자기 이익의 방향으로 말도 우아한 척 내용은 하찮게 변했다. 그녀가 선하다는 전제를 하고 친구였던 나는 사태를 파악하고 변화를 인정하는데 아주 오래 걸렸다. 인간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으나 인간은 변했다. 그것이 드러날 환경이 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여자들은 시집을 잘 가서, 돈이 많아서, 누구랑 놀더니 등으로 그 변화를 이해하지만 사실 변화의 씨앗이 미처 몰랐을 뿐 내부에 있었으므로 인간은 변한 것이다. 그 친구가 자기 뜻대로 방향대로 만남을 좌지우지하자 나는 인연을 끊었다. 그녀는 내가 만만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관계에 대해 진작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나의 무지에 대해 오래 자책했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채 사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은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고 착각하며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다 선하게 살리라 쉽게 가정한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들은 귀신같이 그런 사람을 찾아 사기를 친다. 사람들은 쉽게 사기를 당한 사람도 잘못이라고 얘기하지만 사기를 친 그놈이 잘못한 것이다. 우리는 가해자에게 더 관대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기 친 놈이 더 당당하고 뻔뻔하게 돌아다니고 피해자는 본인을 자책까지 한다.
만만한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한 시어머니는 뒤에서 나를 욕하고 앞에서는 우리 며느리 같은 사람 없다고 했다가 뒤에서 한 사실과 아주 다른 욕이 내 귀에 들어오자 전해준 사람 잘못이라고 했다. 본인의 잘못은 어디에도 없다.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만만해지지 않기를 선언하자 조금은 당황했지만 적의를 더 이상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시어머니의 손을 놓았다. 나를 자책하지 않고 싶지만 시어머니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나도 일조하였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 곧 돌아가실지도 모르는데,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참았던 것이 굳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제라도 나는 만만해지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먼저 싫다는 말을 연습해야겠다.
싫다고, 하기 싫다고, 듣기 싫다고,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알아서 하라고,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라고, 또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