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 준비

내 안의 빛

by 천천히바람

지나가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그 꽃을 비추는 순간 그것이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흰색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빛날 준비가 되어 있어서 거의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흰색요. 그것을 칠십 대에야 깨달았으니, 늦어도 엄청 늦은 거지요.


여전히 깨닫지 못한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날은 바람 한 줄기만 불어도 태어나길 잘했다 싶고, 어떤 날은 묵은 괴로움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그런 고민을 하겠지요. 철쭉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을 겁니다. 오로지 빛에만 집중하는 상태에 있지 않을까,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철쭉의 마음을 짐작해 봅니다. 바깥의 빛이 있고 안의 빛이 있을 터입니다.


-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




내 안에 있는 나와 밖으로 보이는 나. 내 안에 있는 나의 많은 모습 중 좋은 모습을 더 찾아내고 싶고 그러려고 한다. 내 안에서 나도 몰랐던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특히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흥분할 때의 모습은 참 부끄럽고 연구대상이다. 슬며시 유복하지 못한 환경과 부모님의 충분하지 못한 사랑으로 원인을 돌려보지만 이제 50이 넘었으니 성장과 치유는 내 몫이다. 알면서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내 안의 나만 알고 있는 또 하나의 내 모습은 눈물이 과하게 많은 것이다.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친구가 조실부모하고 할머니와 남자형제 둘과 함께 살았다. 고3 어버이날 그 할머니가 장한 어버이상을 받으셨는데 운동장 맨 앞줄에 있던 나는 내 할머니도 아닌데 그렇게 눈물이 났다. 멈출 수가 없었다. 첫 조카의 유치원 졸업식에 가서 우는 사람은 단 3명이었다. 우리 엄마와 나와 조카. 이건 유전이다.


<시선으로부터> 이 책의 주인공인 심시선의 안에는 많은 빛이 있었고 그 빛을 밝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손들이 엄마, 할머니, 장모님이었던 그녀를 빛처럼 따른다. 내 자식들에게 무엇을 물려줘야 하는가를 제대로 알려준 책이다. 그녀의 자손들은 하늘로 간 엄마를 생각하면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살아생전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좋은 모습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추억을 가지고 있다. 나는 죽고 나면 그만이라고 여기지만 후손들이 모여 내 이야기를 나쁘게 하면 또 성질이 확 올라올 것이므로 좀 더 노력해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유전자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병원에서 질병의 이력을 조사하면 항상 물어보는 것이 부모의 동일질병여부이다. 암이나 뇌질환, 고혈압 등의 성인병을 조사할 때도 항상 유전적 영향을 확인한다. 남편이 병원에서 받은 질문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유전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헷갈린다.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건강검진을 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질병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인품 체형도 닮아간다. 내 안의 미처 몰랐던 나를 알고 싶으면 싫든좋든 부모를 봐야만 한다. 속으로 꿍한 성격인지 일단 내지르고 보는 성격인지 부모를 보면 참고가 된다. 시어머니는 샘이 몹시 많고 그걸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꿍한 성격이다. 그래서 남들이 지나가는 말로 별생각 없이 한 말에도 몇날며칠이 아닌 몇 달 동안 그 사람에게 쏘아붙일 말을 궁리했다. 경로당 할머니가 사이즈가 작아진 옷을 주셨는데 시어머니는 자기를 뭘로 보고 이런 입을 수도 없는 옷을 주냐고 자기를 무시하는 것이 틀림없는데 그 할머니는 자기보다 가난하다고 몇 달 동안 분해 하시며 집에 오는 사람 아무에게나 얼굴도 모르는 그 할머니 흉을 보았다. 듣다 못한 내가 다음에는 옷 필요 없다고 그 자리에서 말씀을 하시라고 그분은 버리기 아까운 옷을 나눔하신거라 했더니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앞에서는 적절한 대응을 못하고 그저 뒤에서 억울하고 분해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앞에서 할 말은 앞에서 해야 오해가 없다. 상대방은 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줄 하나도 모른다.


반면에 친정엄마는 참을 줄 모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얘기를 한다. 물론 좋은 얘기도 있지만 말이란 것은 아니한 만 못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뭘 찾아보거나 기억하려는 노력 없이 일단 물어본다. 엄마는 앞에서 다 말해서 본인은 뒤끝이 없다고 하지만 상대방은 뒤끝이 두고두고 남는다. 그리하여 엄마의 며느리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뒤끝이 없는 시어머니의 말을 다 곱씹고 똑같이 말하고 있다. 물론 엄마는 상처를 받는다. 중간에 끼인 나는 이제 중재가 버겁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본인의 행동만 정당화하고 자신의 성격이니 상대가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관계가 이동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더 힘이 있었고 지금은 그 반대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폈지만 잘못 편 것이다. 며느리는 억세지고 시어머니는 늙어간다. 그러므로 젊고 힘 있을 때 온화하게 말하고 정을 담뿍 듬뿍 주는 것이 맞다.


남편도 나도 각자의 어머니를 닮을까 걱정이다. 젊었을 적엔 통제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본인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을 보면 더 조심해야 한다. 이제 나도 내가 흉보던 시어머니가 될 것이고 내 며느리는 내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착한 나의 모습도 나는 사랑할 것이다. 약자를 보면 능력도 안되지만 그래도 오지랖을 펴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 아픈 남편에게는 더 따뜻하게 더 편하게 더 많이 웃게 나를 잠시 내려둔다. 자기 자랑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내 안의 내가 그런 사람이다. 영악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정의로운 나를 내가 돌보고 싶다. 그래도 된다고, 아들이 엄마만 생각하라고 오지랖 금지라고 하지만 젊은 그가 뭘 알겠는가?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는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주의 질서에는 분명 있음을 살아갈수록 느낀다.


내 안의 더 좋은 빛을 찾아가는 것이 남은 인생이면 좋겠다. 분명 신은 내게 시련을 주셨다. 그것도 내 능력을 초과하는. 나는 지금 애쓰고 애가 타고 있다. 그럼에도 신을 믿고 의지한다. 신은 내게 시련을 통한 성장을 기대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no more, thank you, ple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