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9월

설레는 구체적 이유 없음

by 천천히바람


심리학


가재는 새우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짝사랑으로 머물러

무의식의 세계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죽음에의 충동으로 바뀌었다.


심리학자가 면밀히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 사이에 가재가 달아나 버렸다.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리학자는 비록 말은 못했지만,

가재의 그런 행동에 대해 화가 났다.

그래도 그의 이성적인 머리는


여전히 그 사건에 관해 골똘히 생각했다.

가재는 의사의 도움 없이도 병이 나았고

다른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사는 가재의 고뇌가

돈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




9월이다. 더위가 서서히 물러나 낮에도 햇빛 걱정 없이 마실 나갈 생각에 설렌다. 이 설레임을 정의할 수는 없다. 그저 신이 주신 작은 선물이다. 삶은 사계절과 같다. 여름이 가면 아주 잠깐 선선한 가을이 와서 다시 한번 살아볼 의지를 굳히면 곧 겨울이 닥친다. 풀 죽어 우울하게 지내던 긴 겨울이 지나면 화려하고 짧은 봄이 와 잠시 희망을 주고선 또 여름을 견뎌야 한다. 짧지만 이유 없이 셀레는 봄, 가을을 희망의 양분으로 삼아 힘든 여름과 겨울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내 삶도 봄, 가을 아주 잠깐 좋은 일로 설레어 희망과 긍정을 품으면 아니다 다를까 신은 긴 시련의 여름과 겨울로 나를 한없이 작고 기죽게 만든다.


좋은 것은 곧 지나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9월이 오자 이유도 없이 또 설렌다. 아침과 저녁에는 무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낮에는 여전히 여름이 그 권력을 놓을 생각이 없다. 그래도 영원한 건 절대 없다. 여름은 제 권력이 영원한 줄 알고 까불던 모든 왕들의 몰락과 같다. 한여름과 싸워 이길 필요가 없다. 그것은 한창 위세를 떨다가 때가 되면 물러날 것이니 그저 조용히 기다리면 된다. 따가운 햇살과 드러난 모든 살을 태워버리는 그 강렬한 열기와 끈적거리는 땀은 이열치열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낮게 몸을 웅크리고 바깥세상을 보려는 욕망을 자제하며 나를 다스려야 한다. 매일이 신나고 행복할 수도 없고 생로병사를 피해 갈 수도 없다. 삶이 후반부로 갈수록 겪어야 하는 불편한 진실을 보아내야 한다. 친구의 투병과 죽음을, 도무지 믿기 힘든 남편의 약해지는 모습을, 내 형편이 좋을 때 곁에 모였던 사람들이 떠나는 모습도 보아내야 한다.


한 사람이 곁을 떠날 때마다 더 좋은 사람을 책에서 찾는다. 소리 내어 내게 말을 걸지 않지만 그의 진심은 묵묵히 내게 말을 건다. 그의 선한 의도는 상처받고 있는 사람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려고 진심을 담아 쓴 글에 나타난다. 세상의 좋은 사람을 다 만날 수가 없어서 책을 통해 그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커피 한 잔이 부족해 두 잔을 마시며 그들의 글을 읽다가 마음이 따뜻한 순간이 온다. 그렇게 저물어 가는 인생이지만 아름다운 노을처럼 더 붉고 찬란하게 저물어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