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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Feb 19. 2023

여고동창생

휙하니 30년이

'여고동창생'

촌스럽다. 세상 다 산 할머니들이나 과거를 그리워하며 쓰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처음 얼굴을 맞대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로를 조심조심 살폈던 1988년 그때 우리는 열입곱이란 아름다운 나이였다. 172~174를 오락가락한 나는 키순의 번호에서 항상 1번이었다. 한 반에 60명이었을까, 교탁 줄의  키 작은 친구들과는 친해질 기회가 그다지 없었고 키만 큰 나는 작은 고추가 맵고 야무진 그들이 어색했다. 물론 서로를 기억하는 추억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년도 훨씬 전에 커피숍에서 두 반 전체로 어색한 만남을 하고 속으로 다음 모임은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친구들은 여전히 삶과의 어설픈 전쟁 중이라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지 못했고 다음 모임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아차렸다. 8년 전(?)에 갑자기 밴드로 모임이 재결성되었고 다시 한번 우리는 온라인에서 서로의 궁금한 안부를  급하게 일주일 정도 묻다가 이후의 띄엄띄엄한 참여에 썰물이 빠져나가듯 조용해졌다.  아직 글지 못해서, 삶을 살아내는데 여전히 서툴어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2023년 2월 부산에서 제주로 주 거주지를 옮겨 나름 여유롭고 무료한 나에게 부산친구가 서울친구를 만나면서 급 밴드재결성을 의뢰했다. 그나마 검증된 인품의 - 삶의 고통을 적절히 겪은, 공감능력이 뛰어나 여전히 연락처 목록에 있는, 어는 정도의 격 좋음이 확인이 된 - 친구들로 소소하게 열 명정도의 온라인 모임을 결성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제는 사는 곳도, 아이들도, 사는 형편도 다르지만, 아름다웠던 우리의 열입곱에서 열아홉의 시간을 함께 하여 그때 나와 그들이 어떠했는지 설명 없이 함께 기억할 수 있는 만남을 통해 마음속 한 부분이 공감과 기쁨으로 차오르는 것이다.

물론 혼자만의 기대와 착각일 수 있지만 우리는 30년을 더 살아내면서 삶의 녹록히 않음과 철없던 시절 대단한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린 우리가 어리석었음을 이제는 인정할 나이에 도달했으리라. 그 시절 그 나이가 아름다웠음에도 미래의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커리어우먼에 똑똑한 나, 오직 나만을 여신처럼 받드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똑똑한 아이들로 둘러싸여 티끌 없는 집에서 우아하고 교양 있는 우리를 어렴풋이 상상하지 않았을까?  레드카펫이 나를 위해 분명히 깔려있을 것이라 순진무구하게 믿고 빨리 졸업해서 사회에 나가려고 무진장 애쓰던 십 대의 나는 이제야 정신을 차렸고 모든 순간이 그러하듯 지나가버린 순간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휙 돌아보니 30년이 지났고 나이 듦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추억과 기억이 또렷해지고 그리워지는 것, 여고동창생 모임을 설레어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가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모든 것에 기대치를 부여했다. 이제 그걸 내려놓고 서로를 위로하며 촌스런 여고동창생이 아니라 아름다운 중년의 순간을 함께 할 동지로서 다시 모이길 또다시 순진하게 기대한다.

뭐 어떤가? 남편은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고, 애들은 언제나 나를 가르치려 들고, 집에 먼지가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커리어우먼은 개뿔, 아줌마로서 당당하고, 우아와 교양은 어쩌다 가끔인 지금의 나도 괜찮은데 이 모임 하나 기대한들 어떠랴. 어차피 인생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잘 알고 그럼에도 삶은 재밌고 하루하루는 신나야 한다. 친구들아 싸우지 말고 너무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좀 오래가보길 소망한다.

근데 6,70인 언니들도 모이고 나면 매번 말이 많더라. 그러니 너무 자주는 만나지 말고 온라인으로 소식 잘 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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