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에게 올 행운
이모는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이모를 갖는 것으로 나는 내 인생의 행운을 다 써버린 거다. 너무 강력한 행운이어서 오래 지속되지 못한 거고.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뭐든 쌍이 있지 않은가. 쌍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들었다. 우주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아주 거대한 별도 그렇고, 가장 작은 원자도 그렇다고. 그렇다면, 내 인생의 행운에 이모만 있을 수는 없다. 이모를 끌어당기면서도 밀어내는 또 다른 행운이 있어야 했다. 그건 바로 구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온갖 나쁜 것들이 빠져나왔대. 근데 거기 희망은 왜 있었을까. 희망은 왜 나쁜 것을 모아두는 그 항아리 안에 있었을까. 이 얘기를 담에게 꼭 해주고 싶었는데 해주지도 못하고 나는 죽었다.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 최진영 , <구의 증명> 중에서 -
오랫동안 일상을 쓰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서도 무릎을 탁 치는 문장을 찾지 못했다. 사는 것이 늘 같은 방향으로 예측가능한 것이 아니니 비슷한 일상에도 오늘의 느낌과 어제의 느낌은 같지 않았다. 문득 하늘을 보니 하늘은 그대로인데 구름은 시시각각 색깔과 모양, 심지어 분위기도 달랐다. 하늘도 그런데 하물며 미물에 불과한 내 삶은 말해 무엇할까? 더 이상 완전히 새로운 것을 알고자 열심히 사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내 주위에 있었으나 무지해서 몰랐던 것을 그저 발견하는 삶을 살 것이다. 늘 있었던 그 하늘과 그걸 채우는 구름과 별을 그저 정답게 보려고 한다.
어릴 적 늘 궁금하고 설레었다. 장래의 내 배우자가 누구일지, 내 반쪽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틀림없이 그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나은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니 나 또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꿈꾸었던 반쪽을 고르기에 앞서 내 주제파악을 먼저 했고 이상과 현실 그 어디쯤에서 적당히 타협했다. 하필이면 그 순간, 그곳에 있던 그와 예기치 않게 쌍이 되어 내 어릴 적 바람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었다. 내 기대치와 달랐지만 어찌 되었건 그와 더불어 우리가 주인공인 설레는 삶을 잘 시작할 수 있으리라 또 착각했다.
아뿔싸! 그와 나의 삶에 끼어드는 조연이 그렇게 강력한지 그때의 어리석은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주인공이 결정된 드라마의 주인공을 전혀 인정하지 못하고 많은 조연들이 당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허락도 없이 끼어들었다. 그리하여 결혼이란 것을 하고서도 우리는 진정한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지 못했다. 버릴 수도 없고 함께 하기엔 너무나 생각이 다른 조연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들을 버리기엔 내 간이 너무 작았고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내 덕이 부족했다. 힘겨운 사투를 펼치면서 이번 생의 반쪽 찾기는 실패임을 서서히 받아들이던 그 순간 우리 앞에 전혀 예상치 않은 장애물이 놓였다.
남편의 건강에 예상치도 않은 문제가 생겼다. 그러자 그는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고 그와 나는 드디어 한 쌍이 되어 우리 삶에 주인공이 되었다. 아픈 남편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으나 반갑거나 서글프거나 설레지 않았다. 그런 감정보다는 우리가 쌍이었다는 사실만을 아주 아주 잘 알게 되었다. 내 아이들의 아버지로 내 청춘이라는 황금기에 만난 반쪽으로 지난 세월의 추억을 온전히 공유할 수 있다. 그와 나 둘만이 우리가 처음 탔던 프라이드 차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그 차로 누볐던 골목길과 바다도. 함께 갚았던 대출이자의 무게와 숱하게 싸웠던 순간들이 이제 와서는 별 의미도 없지만 소중했음도 알고 있다. 자다가 쥐가 내리면 그를 부르는 것이 제일 편하다. 이제 와서 그가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주인공인 쌍이기 때문이다. 여주만 존재하는 명작은 없다.
우주에는 쌍이 있다고 했고 우리의 우주에는 그와 내가 한 쌍이다. 오랫동안 조연들의 사고수습으로 잊어버렸는데 그는 우주가 내게 준 나의 반쪽이다. 비록 총명하던 눈빛도, 종아리의 근육도 줄어들었지만 이번 생의 우주에서 우리는 쌍으로 존재해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줄 드라마를 마쳐야 한다. 삶이 그에게 병을 줬으니 이제 그와 내게 선물도 주어야 공평하다. 나는 받을 예정이니 꼭 선선한 바람이 부는 아름다운 길에 하늘을 보면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그런 소중한 행운을 보내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