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가져가는 기억

우리의 기억

by 천천히바람

우리는 불확실하게 존재하다가 사랑받음으로써 비로소 확실한 존재로 인정받는다. 폴 오스터는 소설 {달의 궁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무엇인가가 팔을 뻗어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의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한다 do'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사는 live' 것이다. 나는 내가 강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인간은 겨울을 견디는 나무이면서 또한 연약한 나뭇잎이다. 내게는 삶을 경이롭게 바라본 경험도 있고, 소유와 상실의 경험도 있다. 자비심을 발휘한 적도 있고, 참을성을 잃은 적도 있다. 껴안은 적도, 주먹을 날리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 모든 감정 상태 중에서 결국 내가 죽을 때 기억하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은 경험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그때, 누군가가 팔을 뻗어 우리를 붙잡아 추락을 멈추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




우리는 죽는다. 90도 인사를 받던 대기업 회장님도 아름다웠던 여배우들도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이 늙고 병들고 죽었다. 그리고 다른 젊음이 삽시간에 그들의 자리를 차지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정신이 신체의 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직 유치한 나는 늘 착각했다. 좀 다를 것이라고, 나의 불행과 죽음은 아직 멀었을 것이라고.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 둘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우리 집은 예외로 여겼다. 남편에게 문제가 생기자 온몸의 세포마다 슬픔을 넘어선 안타까움과 당황, 자책과 어리석음, 서글픔이 예고 없이 밀려왔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뭔가를 해야 했다. 나와 상관없을 줄 알았던 의료대란이 병원예약을 힘들게 했고 결국은 이사를 선택했다. 제주의 기상이변으로 비행기가 뜨지 않을까 그런 걱정까지 감당하지 못해 섬에서 나왔다. 어차피 정도 들지 않은 곳이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느라 새벽에 출발해서 수서역에 도착하면 지방에 사는 아픈 사람들이 병원 버스를 기다리며 역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존엄성과 보살핌과는 전혀 관련 없이 저 아픈 몸을 이끌고 열차시간을 맞추느라 노심초사 새벽에 집을 떠났을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다.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말씨를 가진 의사에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화가 났다. 누군가에게 신세를 져야 하고 모르는 곳에서 한 끼를 때우고 커피숍에서 무작정 시간을 때우며 5분도 채 되지 않는 진료를 받고 당일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이 여정은 피곤함 뿐이었다. 보호자와 환자의 이동비용은 차지하고 휴가를 내고 함께 한 애들에게도 괜히 미안했다. 하느님은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 내가 교만했을까? 어리석었을까?


눈을 뜨면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설렘이나 기대 없는 하루, 그럼에도 아직은 견딜 수 있음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감사함이 든다. 혹 이 감사함을 놓으면 무너질까 전전긍긍 하루를 억지로 씩씩한 척 버틴다. 나도 모르게 예외 없이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자주 생각한다. 제주의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고장이 나버린 차를 새 차로 바꾸고 좋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새 차도 모든 물건들도 두고 가야 한다. 그러니 이 차를 타고 더 좋은 곳을 그와 함께 하고 떠날 때는 미련 없이 가야겠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하루하루 정리부터 했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있었던 그 많은 것들은 그저 쓰레기였다. 진작 버려야 했었다. 존재하는 것조차 몰랐던 많은 물건들을 버리지 못한 내가 참으로 한심해서 스스로에게 심한 욕이 절로 나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절인연을 평생인연으로 착각하고 미련스럽게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제 정리할 때다. 한 때 같이 웃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끝내는 것이 맞다. 그들에게 섣부른 위로를 듣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인간은 본인이 겪어봐야 제대로 이해하고 나 또한 그랬으니 그들의 말에 더 이상 상처받지 말자.


죽을 때 가져가는 기억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함께 웃은 경험이라고 했다. 굳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과의 사소한 다툼을 늙어가며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철이 드는 줄 알았는데 철이 안 드니 하느님께서 과제를 준 걸까? 2024년은 마치 피할 수 없는 소나기처럼 여러 문제들이 쏟아져 정신을 차리고 버텼다기보다 그냥 존재했던 것 같다. 사실 아직도 분간이 안된다. 솔직히 미래가 무섭고 두렵다. 용감한 척 아무도 미래는 모른다고 말하지만 그가 더 나빠질까 새벽에 잠에서 깨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 민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버티고 있는 나는 나를 지켜야만 한다.



살면서 만났던 천사처럼 고운 언니의 문자에 오늘 가슴이 시린다.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봐 달라고. 남편은 24년 4월에, 언니는 24년 5월에 진단을 받았다. 4월 내내 나를 긍정적으로 위로했던 언니가 5월 어느 날 내게 정신 차리라고 앞으로 더 좋아지는 일은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했었다. 그런 말을 그렇게 할 언니가 아니었기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았다. 부모보다 더 많은 속내를 보여주었던 언니였는데 왜 내게서 한 사람씩 앗아가는 것일까? 아무것도 모른 채 즐거웠던 나날들은 아주 먼 옛날인 것 같다. 무엇을 먹을지 언제 만날 것인지를 정하는 대화가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어느 호스피스 병원이 나은지를 결정하는 걸 도와야 하다니 이건 너무하다. 그것도 맨 정신에, 제정신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하늘에 천사가 모자라면 지상의 천사들을 데리고 간다는 말을 들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지상에는 더 더 천사가 필요하다. 특히 지금의 내게는 더욱 그렇다. 한데 무슨 큰 뜻으로 하느님은 이러실까? 지상에서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를 비워 줄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나 보다. 예고도 없이 준비도 없이 미리미리 하나씩 치워야 했는데 어리석은 나는 이 모든 일이 닥치자 냉정해지지도 침착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하루를 살아간다. 7월의 태양을 느끼고 나무그늘의 고마움을 느끼고 사람 많은 해수욕장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죽을 때 가져갈 추억을 만들어간다. 그것도 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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