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데려가줘
사람에게 덜 기대할 것, 내가 준만큼 똑같이 받으려고 욕심내지 않을 것. 이 두 가지가 인간관계에서 실망하지 않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할까.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왜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못할까. 나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나에게 질문을 건네보자. 오늘 무엇이 나를 즐겁게 했는지 혹은 실망스럽게 했는지 물어보자.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듯이 나와 대화하면 나의 감정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챙기는 첫걸음이다.
나는 마음을 주로 물에 비유한다. 흐르는 물은 때로는 맑고 투명하고, 때로는 탁하고 더럽다. 사람의 마음도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자꾸 자신을 억누른다면 흐르는 물을 댐으로 막아 저수지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정이 들어올 수는 있으나 나갈 수는 없다. 조금씩 수위가 높아진 우울한 감정이 넘치기 시작했다면 댐은 언젠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레몬심리 지음 -
심리학 책을 늘 끼고 살았다. 김형경 소설가의 <천 개의 공감>이란 치유 에세이를 읽고부터 비슷한 종류의 책을 찾아 읽으며 내 안에 상처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깨워 보살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어린 나를 달래고자 눈을 감으면 나의 무의식은 여전히 그 문을 열지 않는다. 유년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굳이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하여 나를 보호하려는 건지 기억의 연속성이나 일관성이 없는 어떤 순간만이 띄엄띄엄 떠오른다. 코피가 나서 일어나 보니 아무도 없어 울면서 엄마를 찾으러 가던 길의 어린 내 모습, 너무 더웠던 초등학교 하굣길, 집이 다 와가는 데 어차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없는 집에 갈 이유가 없어 그늘이 있는 계단에서 한없이 앉아 있던 기억이 또 불쑥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런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저 기억해 주고 아팠겠다 그리고 지나가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수밖에.
스무 살이 되자 법적으로 어른이 된 나는 똑 부러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똑 부러진다는 말을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롤모델도 없이 책에서 읽은 섣부른 성공한 듯 보였던 여자들을 따라 말수를 줄이고 항상 책을 가까이하였지만 실상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심한 말로 개뿔도 몰랐다. 더더욱 인간에 대해서 성선설을 믿었고 당연히 인간이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를 믿는 아주 순진하게 무지했다. 또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몰랐다. 지금에서야 나는 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내가 말하기를 좋아하고 공감하고 공감받기를 좋아하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여기저기 참견도 잘하는 오지랖퍼라는 것을.
그러나 젊은 날 나는 별로 말하기를 즐기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느라 억지로 말을 하는 사람인 줄 착각했다.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말할 힘이 없었고 나보다 더 센 유형의 여직원들 때문에 말할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일을 그만두니 수다를 즐기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말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내게 제일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고민을 얘기하고 험담을 해도 무탈한 누군가가 항상 필요했다. 내 전화를 일 순위로 받아주고 나처럼 나를 고민해 줄 누군가가 내게는 필요했다.
다행히 J와 나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다. 이십 대 후반 뭣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애를 낳고 다 자란 줄 착각했다. 섣불리 다른 사람도 내 마음과 같은 줄 알고 인간의 선함에 기대하며 권선징악을 철석같이 믿고 그저 참고 착하게 살고자 했다. 어리석은 우리가 옳은 줄 착각하며 상처받는 순간마다 우리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고 어설픈 해결책도 함께 고민했다. 그것이 우리가 만만치 않은 결혼 생활과 처음 해본 아이들 양육과 이해하기 힘든 시집 식구들과의 힘든 시기를 견딘 방법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상담사이자 정신과 의사였다.
병원을 간들 누가 J처럼 내 말에 공감하고 시도 때도 없이 몇 시간을 주야장천 들어주겠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긴급처방을 내리고 항상 내 편인 하느님이 급하게 보낸 위로자였다. 신도 대답해주지 않는 답을 우리끼리 찾아내었다. 그것이 실패였어도 나는 J에게 위로받았다.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 그 문제를 빠져나와야 정확히 보이는 관계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그 문제의 핵심을 나는 그녀와 함께 풀었었다.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우리는 나누었다. 나의 급하고 상처받아 탁하고 괴로운 마음도 그녀를 찾아 함께 했다. 내가 이 결혼생활을 영위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그녀이다. 그녀 또한 나에게 동일한 감사를 얘기한다. 우리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늘 고마운 J. 아픈 남편 때문에 힘들어 예고도 없이 훌쩍이는 나를 위해 그녀는 지금도 처방을 내린다. 견디라고, 잘하고 있다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일들이 일어나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고. 그리고 중간을 넘어선 우리의 삶이 마무리하는 날에 더 가까워지기 전에 잠시 생을 즐기자고. 이런 멋진 말은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만 가능한다. 아무나 내게 견디라고 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네가 뭘 안다고 나서냐고 바로 반박할 것이지만 J는 가능하다. 우리가 견뎌온 세월이 증명해 준 것이 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부자가 되어 나를 비즈니스석 비행기에 태워 하와이로 데려갈 줄 것을 요구했다. 아주 당당하게 요구하고 분발을 촉구한다. 그럴 돈이 나는 없지만 친구는 행운이 쏟아져 그깟 비용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를. 그리하여 나를 하와이 여행에 오라고 사정사정해 주길 고대한다. 그곳에서 저물어가는 석양도 보고 훌라춤도 여유롭게 구경하고 다른 세상을 보고 싶다. 권선징악을 믿고 살았던 어리석은 우리를 위로하고 칭찬하고 싶다. 하와이는 꼭 하와이가 아니어도 좋다. 단지 우리의 지난 날 노고를 우리끼리 위로하는 그런 멋진 고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