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단순하게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 오는 안부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들
제각각 모두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 마> -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이었다. 오지도 않고 이루지도 못할 꿈과 환상을 쫓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곁에 있는 것을 제대로 느끼는 것, 그 가치를 알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세월이 갈수록 깨우치는 내가 대견하다. 모든 위인은 뛰어난 업적을 남겼지만 그들도 모두 다 죽었다. 아인슈타인이 이룩한 업적은 대단하다. 그러다 사생활이 담긴 그의 전기를 읽다 깜짝 놀랐다. 첫 번째 부인과 자녀들에게 행한 그의 무책임은 그가 정상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천재였을지는 모르나 가족들에게 그는 무책임을 넘어 잔인하였다. 나는 위대한 위인이 되고 싶지 않다. 다만 내 곁에 있는 남편과 자녀들에게는 따뜻함을 남겨주고 싶다. 세상에 그들의 버팀목이 있었고 성년이 되자 자유롭게 놓아주는 대단하지는 않지만 노력했던 아내이자 부모가 되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어루만지는 바람이란 말이 너무 곱다. 아침을 먹고 이것저것 하다 적적해지는 그 순간 누군가에게 걸려 오는 안부전화는 참 반갑고 고맙다. 무료한 오후 누군가 집까지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공감해 주면 그게 그렇게 편안한 안도감을 준다. 저녁을 맞이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근심 없이 잠자리에 들어 다음 날을 기대하는 힘은 이런 작은 편안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틀림없다. 대단한 돈도 행운도 이제 바라지 않는다. 자연과 사람의 따뜻한 어루만짐이 100세가 넘은 할머니 시인인 뿐만 아니라 아픈 사람들과 그들을 간병하는 나에게도 똑같은 힘이 된다.
외로워질 때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손으로 떠
몇 번이고 얼굴을
적시는 거야
외로울 때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인간에게 위로받을 수 없을 때 뜨거운 여름이지만 환한 밖을 보면 활활 타오르는 생명의 열기를 느낀다. 누군가는 이 열기 속에 청춘의 삶을 살고 있고 또 누군가는 시련의 시간을 달래고 있다. 자연의 질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더위가 이 고난이 끝나면 아주 짧은 소중한 가을이 오지만 곧 시련의 긴 겨울이 오고 다시 온 세상을 환히 비춰줄 봄이 오고 이 과정은 늘 내가 살든 죽든 순환되는 것을. 그러므로 나는 아주 작은 존재로 이 사계를 경험하고 맛을 보고는 떠날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잘 즐기고 행복하게 미련 없이 떠냐고 떠나보내야 한다. 그러려면 할 수 있을 때 실컷 맛보고 즐겨야 한다. 세상이 내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바람과 비와 파도소리와 꽃봉오리를 보고 경탄을 경험했던 어린 날의 나처럼 이 소중한 것은 선택적으로 누군가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었다. 그러니 지금 다시 경탄하고 침묵하고 즐겨야 한다.
약해지지 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시인의 말씀을 따라 아직 100년을 살아내지 못한 나는 약해지지 않아야지. 불행하다고 한숨짓지도 말아야겠다. 돌아보면 행복한 순간도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더 큰 행복을 좇느라 잊어버린 것이다. 살아 있어 좋은 순간들, 그 시간을 찾고 소중히 여겨야지. 행복한 인생을 위해 그것 말고 뭐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다. 투덜거리고 울고 불안해해도 시간은 흐를 것이다. 내게 주언진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다. 약해지지 말아야지. 누군가의 따뜻하고 상냥한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순간이 있어도 잘 참아내야겠다. 진정한 위로는 나로부터. 그리고 침묵의 자연에게 받을 준비를 해야지.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고 선택적으로 착할 뿐이다. 나 또한 그러면서 타인에게 기대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오늘도 단순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