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역전
틀림없이 내게는 글의 장르에 우열을 가리는 분별심이 있었고, 우월하다고 여기는 장르로 승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 역시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임에 틀림없었다. 아마 그 지점에서 내면에 만들어 가진 무의식적 권위자 이미지의 모든 측면이 점검되는 듯했다.
자크 라캉의 '대상 A'나 우리 내면의 빅 브라더, 카프카가 도달하고자 하는 '성'의 주인 같은 인물이 해체되는 것 같았다. 글을 쓸 때마다 내 앞에 세워져 있다고 느꼈던 전류 흐르는 철조망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하거나 허락받을 이유가 없으며, 나의 삶을 누군가에게 승인받을 필요가 없음을 마음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가르는 기준을 하나 가지고 있다. 아마추어가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일한다면 프로페셔널은 자기에게 유익하고 즐거운 일을 한다. 아마추어 타인과 경쟁한다면 프로페셔널은 오직 자신과 경쟁한다. 아마추어가 끝까지 가 보자는 마음으로 덤빈다면 프로페셔널은 언제든 그 일에서 물러설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내면에서 느끼는 결핍감 유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만 가지 행동, 김형경 -
잘한다고 인정받고자 열심히 살았다. 인정의 주체도 나보다 남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중요했다. 내 마음의 밑바닥에는 무시당하는 게 제일 참기 힘들었고 인정욕구가 강했다. 어린 시절 충분히 받지 못한 지지와 격려를 나이 들어서 받고자 나도 모르게 항상 애썼다. 타인의 인정이 세상살이에 그다지 소용이 없으며 어떤 면에선 상냥한 착취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는 늘 '네가 잘하니까, 오빠 시키면 하세월이니까, 딸이니까 네가 해야지, 너니까 얘기하지' 하며 내게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고 당연히 내가 할 일로 만들었다. 어느 심리학책에서 처음으로 딸은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나의 경우를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나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아주 오랫동안 자식의 도리로 여기면서 잘 수행하고, 어쩌다 의문이 들어 짜증 나고 힘들 때는 죄책감 마저 느꼈다. 엄마는 줄 것이 있을 때는 오빠네 먼저, 시킬 일이 있으면 내가 먼저였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섭섭하고 온당하지 못하다는 표현을 겨우 몇 번 하고서야 엄마는 잠시 조심할 뿐이다. 내가 한 것은 엄마에게 그저 자잘한 것이고 오빠에게 준 것도 더 줘야 하는 엄마의 성에는 차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나 스스로 해야 할 것과 거절할 것을 구별해야 하는데 여전히 거절은 힘들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면 기꺼운 마음 없이 불만과 짜증 그리고 죄책감이 함께 일어난다. 엄마가 오빠를 더 사랑하고 더 주고 싶은 것은 엄마의 선택이다. 그렇다고 나를 함부로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내게만 과도하게 일을 시키면 나를 더 믿고 내가 잘해서 그렇다고 합리화했다. 혼자 별 것 아닌 칭찬에 신나서 보상도 없이 무의미한 인정에 만족하며 더 많은 일을 자발적으로 감당했지만 그건 상냥한 착취였다. 아주 쉬웠을 것이다. 그저 우쭈쭈 잘한다고만 하면 좋다고 하니 얼마나 편했을까. 타인에게 내 빈틈의 여지를 잘 보여주고서는 상냥한 착취자들과 잘 지낸다고 착각하고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썼던 것은 유년의 결핍이었다. 이것을 오십이 넘어서야 서서히 깨달았다. 사람은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고 쿨하게 돌아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야 하는데 타인의 평가와 감정을 항상 내 감정보다 우선시하고 살다 보니 내 마음을 보살필 여력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남편과의 법적 결합으로 내게 갑의 위치를 얻고 생활비며 제사의 의무를 내게 넘겼다.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로 이 새로운 가정을 잘 가꾸겠다는 아주 아주 어리석은 생각은 스스로 을이 되어 과도하게 베풀도록 했다. 백화점 옷과 보약과 용돈이 당연시될 무렵 나는 이 관계에 give and take가 아닌 일방적인 give만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어머니는 아이들의 돌에도 반지는커녕 어떤 선물도 없었다. 다른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 결혼식에 예물로 신부와 비슷한 다이아 반지를 아들에게 받은 것은 아직 이해가 어렵다. 남편은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에 빠진 나와 결혼을 했고 효도의 책임을 공동이 아닌 나를 통해 대리하게 했다. 그러다 해도 해도 만족이 없는 갑에게 서서히 정이 떨어졌다.
갑은 을에게 상처를 주어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을의 성장과 변화가 있고 을이 갑이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아무런 감사함 없이 을이 된 나의 관계를 깨달았고 우리와 함께 살던 시어머니의 생활비를 직장을 그만두고도 몇 년이 지나서야 용돈으로 줄였다. 당연히 반발은 상당했지만 나는 더 이상 을이 아니었다. 애매한 위치가 된 갑의 반격이 꾸준히 있었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고 국가에서 노령연금이 나오자 예금이 많으면 노령연금의 수혜자가 될 수 없음을 알리고 용돈을 줄였다. 그렇지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준비해 드렸으나 숨겨왔던 그분의 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친척들에게 며느리가 얼마나 나쁜지 본인이 얼마나 서럽게 생활하는지 밥도 굶는다는 없는 얘기를 지어내다 들키자 우리 사이에 갑을 관계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갑도 아닌 성장한 을도 아닌 그저 인간으로서 더 이상 이 결혼을 유지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추석을 앞두고 그런 일이 일어나자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였다는 생각에 시어머니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하였지만 몇 달 뒤 같은 일은 반복되었고 평생 연락이 없던 그분의 친척들이 시어머니에게 연락이 오고, 더 상태가 나빠지는 남편을 보자 나는 그분에게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음을 얘기했다. 시어머니는 아픈 남편이 아닌 본인의 안위가 우선인 습이 있으므로 남편부터 돌봐야 하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40년 넘게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진 장남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하시고 작은 아들과 사셔야 한다고 설득했으나 거절하셨다. 장남의 상태보다 작은 아들과 함께 할 본인의 안위가 너무 걱정이 되어 제대로 된 작별을 할 수 없었다.
강강 약약인 나의 본성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실컷 이용당했다. 가족에게도 직장동료들에게도. 원인은 이용당할 틈을 보여준 내게도 있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조그만 권력을 가지자 미친 듯이 권력의 맛에 취해 을에게 상처를 주었다. 을은 제대로 방어를 하지 못하고 당하고 당하다 어느 순간 폭발하고 관계를 단절한다. 더 건강한 대화를 통한 해법이 있었겠으나 그 과정들은 갑의 기세에 시도해 보지 못했다. 설익은 갑의 위치에 취해 을의 성장 후 반격은 예상조차 못했던 갑의 실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