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환대보다 적대를, 다정함보다 공격성을 더 오래 마음에 두고 기억한다. 어떤 환대는 무뚝뚝하고,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환대였는지 적대였는지 누구나 알게 된다.
구세주의 탄생은 그렇다고 쳐도 평범한 인간의 생일은 왜 축하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환대의 의례일 것이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좋은 곳에 온 사람들끼리 환대하는 것은 쉽다. 원치 않았지만 오게 된 곳,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다. 생일 축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인류가 고안해 낸, 생의 실존적 부조리를 잠시 잊고, 네 주변에 너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의식이 아닌가 싶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실망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실망이 오른쪽으로 돌면 기대도 함께 돈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
-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없다고 했지만 이제 조금만 흔들리고 싶다. 더 솔직하게는 흔들리지 않고 싶다. 삶은 당연하다는 듯 나를 흔들었고 지금도 흔들지만 단련되기는커녕 나이가 들수록 간은 더 더 작아져 사소한 일에도 깜짝 놀란다. 최대한 쥐어짜 낸 안간힘으로도 역부족이었던 시간들을 견뎌내고 소심하게 삶으로 한 발을 내밀어 또 한 살 더 먹었다. 이제는 나이 들수록 더 현명해지고 배포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더 소심해지고 쫄보가 되어 내 가족만 챙기는 것도 사실 너무 버겁다. 속으로 하루하루 잘 버티기를 제발 심심해도 무탈하기만을 간절히 빌고 있음은 비밀이 아니다.
이 땅에서 이십 대 철부지 어느 날에 주부이자 엄마라는 큰 이름이 주어지고 갑자기 철이 들라고 강요받으며 30대를 보냈다. 갈수록 작아진 간을 아줌마화된 목소리로 숨기면서 가정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갉아먹다 어느 오십 줄에 어리석지만 대견한 나를 발견하고 남은 건 훈장 같은 나이다. 그러니 멋모르고 덥석 결혼한 대가를 치르고 돌이킬 수 없는 청춘을 아프게 떠나보낸 나이 먹은 나의 생일을 내가 제일 축하해야 할 것 같다.
청춘이라는 이름은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프다. 신체가 건강했고 정신이 또렷했던 그날들이 그렇게 찰나였음을 이제야 깨달아도 결코 돌아갈 수는 없다. 후회라는 말은 삶의 동반자이다. 중년은 청춘을, 노년은 중년의 시간들을 후회하겠지. 어리석음도 평생의 친구다. 뻔히 알면서도 또 반복하는 실수. 그러니 오늘은 조금 나에게 너그러워져야겠다. 나를 관대하게 대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누가 나를 환대해 주길 기대하지 말고 내가 나를 향해 두 팔 벌려야겠다. 웰컴 투 마이 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