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by 천천히바람

감히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족의 치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 판단, 가치관의 오류와 근거 없는 확신에 대한 오만함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이미 틀렸다고 확인된 것에 저항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순명해야 한다. 어릴 적, 나이 든 가톨릭 사제들이 40대에 추기경이 된 김수환신부님에게 순명을 바치는 순간을 찍은 사진을 보았다. 가톨릭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 사진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순명이라고 했다. 대단하지 않은 인간인 내가 운명에 순명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운명에 맞서고 도전하기엔 젊음은 이미 가버렸고 배짱도 사라졌고 갈수록 간은 작아진다. 나의 남편은 원인도 모르고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치매환자가 되었다.


우주의 무한한 시공간을 기준해서 보면 나는 한 톨의 먼지보다 못할 수 있다. 먼지는 감정이라도 없지만 감정과 알량한 자존심을 가진 나라는 인간은 먼지보다 고통스럽다. 작년에 남편은 뇌위축으로 온갖 검사를 하고 알츠하이머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한숨 돌렸으나, 올해 뇌가 더 위축되어 의사는 전두측두엽치매로 진단을 내렸다. 뇌의 위축과 의사의 경험으로 내리는 진단이라 많이 의심스럽고 순수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니 받아들이기 싫다. 그렇지만 의사는 나보다 분명 더 똑똑하지 않은가. 받아들이기 싫은 것이 더 컸기 때문에 의사를 신뢰하기가 정말 쉽지 않아 여전히 이 병원 저 병원을 알아보지만 서서히 받아들여야만 함을 알고 있다. 병명조차 생소한 이 병은 브루스 윌리스가 앓고 있는 치매이다. 단어와 정확한 말의 상실로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다. 관련 자료도 많지 않아 보호자가 쉽게 받아들이기도 대처하기도 더 어렵다.


현재 나의 최선과 상관없이 남편은 아주 조금씩 서서히 내가 알던 그 사람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는 상당히 예민하고 고집이 세고 사소한 것에도 화를 잘 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오로지 자기를 보호하느라 예민과 고집에서 멀어졌다. 화를 내는 경우도 거의 없다. 우리의 대화는 나의 수다와 설명과 애달픈 질문이 95% 그의 단답형 대답이 5프로나 될까? 그렇지만 그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의 존엄을 가지고 있다. 화를 내거나 큰 소리가 나는 것을 피한다. 어느 것이 그의 진짜 모습일까? 나보다 앞서 가는 그의 뒷모습에 그 많던 근육과 술로 가득했던 볼록한 배는 없다. 근육도 살도 빠진 초로의 중년과 노년 그 어딘가의 남자가 말없이 산책하는 모습은 나를 몹시 슬프게 한다. 그는 분명 우리가 함께 걷던 그 길을 가지만 내가 알던 그 사람과는 다르다. 항상 나를 앞서 자기의 보폭대로 걷던 그 사람은 어쩌다 내 앞을 걸으면서도 뒤돌아 내가 오는지 확인한다.


우리의 신혼이 다시 온 것이라 나를 세뇌한다. 묵언수행을 하는 스님처럼 말이 없는 그도 묵언수행 중이라고 나는 나를 위로한다. 신이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의미 없이 너 한 번 당해봐라고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느님의 의도조차 알고 싶지 않지만 매달릴 수 있는 곳은 기도뿐이다. 아이들과 나는 그를 다정하게 대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본인의 말만 맞다고 윽박지르던 아버지가 이제 돌보아야만 하는 어른아이가 된 것을 보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를 슬프게 성장하게 했지만 우리는 지금 닥친 상황에 순명하고 있다. 운명과 싸워봤자 분명 질 것이 뻔하므로 나는 싸우지 않기로 했다.


다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내게는 닥치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은 오만함이었을까? 나의 중년이 남편의 간호로 흘러가리란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은 무지였을까? 혼자서 꼬리를 무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은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 버린다. 나는 요즘 에라 모르겠다는 말이 좋다. 젊을 때 젊음이 그리 빨리 갈 줄 몰랐고 나이 들면서 아플 것이라 생각도 못했다. 어떻게 다 알고 대비가 될까? 지나간 것도 다 몰랐었고 앞으로 다가올 것도 다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신도 아닌 내가 이 정도로 견디고 있는 것도 기특하다고 칭찬해야 한다. 나는 나에게 더 이상 인색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남편도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남편도 내가 돌보아야 할 사람이다. 그의 곁에 내가 있는 한 그는 안전하다. 그리고 부디 그의 병이 멈추길 간절히 기도한다. 낫는 것이 아니라 멈춰만 주어도 감사하다. 더 이상은 내가 알던 그 사람을 위해서 신도 양보해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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