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1935. '리스본의 영혼'이라 불리는 포르투갈 최고의 서정 시인. 자신 안의 여러 자아에게 각각의 이름을 부여해 70여 개의 이름으로 글을 발표. 생존했을 때는 그의 시를 이해한 사람이 없어 출간 시집이 단 한 권뿐이었으나 사후에 엄청난 양의 글이 발견되어 현재까지 분류와 출판이 진행되고 있다.
가족이라 맺은 인연 중에 제일 함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이끌었던 이는 아이들이었다. 잘 보살핀다는 미명아래 내가 좋아하는 것, 내 목표를 강요하면서 '너 잘되라'고 그러는 것이라 했다. 반성의 이 순간에도 그들이 내 수고를 알아주고 절대적으로 사랑하길 원하는 이 이기심이 무섭다.
저 시에 '돌'이라는 단어가 '자식'으로 읽혔다.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니어서 좋고 존재해서 기쁘다. 거기까지만.
자식은 존재 자체로 고맙고 바람이 부는 소리를 함께 들어서 행복했던 그 인연까지다. 그다음은 각자의 삶이다. 부모도 자식이 노고를 알아주면 감사한 것이고, 자식도 부모에게 기댈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다.
청춘의 격정과 육아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서서 이제 나를 차분히 돌보고 싶은데 부모는 육신의 고통과 정신적 외로움을 날마다 호소한다. 자식은 그들의 근황을 친구와 나누며 부모에게 엄청난 지적과 충고를 시작한다.
나의 우아한 중년을 물 건너가게 할 수 없다. 청춘을 청춘답지 않게 보낸 것도 나에게 미안한데 한 번 맺은 인연이라고 타인이 나에게 함부로 기대게 할 수는 없다. 물렁한, 마음 약한, 어중간하게 착한 나를 강하게 밀어붙인다.
나도 경이로운 사물로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마음씀으로도 준 것도 없이 만만하다고 당당하게 받으려 하는 것이 화가 난다. 이제서야.
'내가 좀 참지, 에이 그냥 내가 하고 말지'했더니 당연하게 내 일이 되었고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사는데 나는 그들을 대신해 내 시간과 노력을 대가도 없이 바쳤다.
경이로운 사물은 누구도 아닌 '나'다.
내가 먼저 가장 좋아하는 나를 보살펴야 날아가 버린 격동의 청춘은 어쩔 수 없고 우아한 중년이라도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