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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Sep 16. 2023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8

사랑하는 아버지께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게 생긴 일 중에 최고의 일이다. 지금 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나는 현재의 내 나이에 이를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지상의 삶에 어린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깨닫기도 전에 이 땅에서 불려 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순간들이 경탄의 눈으로 세상을 볼 가능성을 선사해 준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안다. 나이가 들수록 하찮고 피상적인 일들에 대해 인내심이 줄어든다. 돈과는 상관없는 풍요로움이 있다. 자신의 삶에 간심을 둘 때 생겨나는, 세상을 보는 올바른 시각과 풍요로운 지혜는 그 안에 당신에게 가르쳐줄 모든 것을 품고 있다. 그리고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제대로 배우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우리가 살면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라는 점이다.


"비행기 안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묶인 채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죠. 그리고 일종의 빛처럼 보이는 아우라 같은 것이 그들의 몸을 떠나는 것처럼 보였어요. 어떤 사람들의 것은 더 밝았고요..... 나는 그 밝기나 희미함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 오프라 윈프리





아버지와 나는 같은 음력 7월에 태어났다. 1998년 여름 아버지는 57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중 십여 년은 요양원에서 지내셨다. 폐결핵이었다. 제시간에 식사와 약을 복용해야 했고 숨이 차서 힘든 일은 하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요양원 생활을 힘들어하셨다. 조용한 시골에 혼자 살고 싶어 하셨지만 불가능했다.


나는 아버지의 아우라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분명 밝고 희미하게 빛났으리라. 그분의 선함으로 아우라는 밝지만 늘 편찮으셨으니 기운이 없어 밝지만 희미한 아우라. 아버지가 가여웠다. 선하고 지혜롭고 문장도 필체도 좋고 외모도 깔끔하셨지만 단 하나 돈이 없는 삶은 서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제대로 늙어가셨다. 절대로 언성을 높이거나 유머를 잃지 않으셨다. 인간이기에 단점이 없을 수는 없으나 언성을 높이지 않는 삶은 쉽지 않다. 작은 일에도 화내고 삐지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내 아버지는 그리하지 않으셨다. 세상사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셨다. 그것을 다 배우지 못하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나는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다.


부녀의 인연으로 만나 안타까움이 대부분인 세월이었다. 그래도 내 유년기에 품격 있는 어른의 모습이 어떠한지 보여 주셨던 아버지. 이제 아버지를 제대로 추모하고 싶다. 돌아가신지 25년이 넘었는데 꿈속에서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 나타나 신발을 사달라고 하셨다. 발이 시리다고. 보라색 얼굴에 웃지도 않아 걱정이 되고 슬펐다. 비싼 신발을 사준다고 했는데 시장에서 사자고 하셔서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몇십 년을 안보이셨다. 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나를 걱정하지 않고, 나도 아버지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꿈에 오시지 않는다고 자연스럽게 믿었다. 얼마 전에 생각지도 않았는데 꿈에 나타났다. 의미 없는 꿈이었다. 아버지는 하늘에서 나는 땅에서 서로 바쁘게 행복하니 걱정할 거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릴 적 병원에 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많이 썼다. 내가 해야만 할 일이라고 느꼈다. 병원에 병문안도 혼자서 잘 다녔다. 시외버스를 타고 혼자 돌아오면 저녁 어스름이 내렸다. 그냥 슬프고 외롭고 고독했다. 이유를 모르는 슬픔을 안고 혼자 버스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버지 병은 낫지 않을 것 같다고, 기도를 해도 들어주지 않지만 해야만 한다고, 겨울 창밖에 잎이 떨어진 나무가 나 같다고.


사랑하는 아버지. 하늘에서 건강하시죠? 이 생에서 일을 마친 사람을 하늘이 빨리 데려간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어요. 아버지는 이 생에서 일을 다 마친 사람이라 먼저 가셨고 57년의 삶은 짧은 어드벤쳐 소풍이었기를 기도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삼씨인 맵씨, 솜씨, 말씨가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근데 맵씨는 틀렸어요. 자꾸 살이 쪄요. 저는 그래도 살찐 건강함을 택할래요. 나중에 만나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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