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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Oct 29. 2023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10

 매일 읽겠습니다 -황보름

책은 수저나 망치나 바퀴, 또는 가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그런 물건들 말이에요. - 움베르트 에코, 책의 우주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고전은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 - 마르틴 발저, 어느 책 읽는 사람의 이력서




흐르는 물은 더 넓고 깊게 진행하면서 스스로 수로를 만들어 낸다.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흐를 때는 이전에 스스로 파 놓은 길을 따라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외부 물체에 대해 받은 인상들은 우리 신경 체계 속에서 적합한 길을 더 많이 만들어 내고, 이 같은 살아 있는 통로들은 한동안 막혀 있다가도 비슷한 외부 자극을 받을 경우 되살아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레옹 뒤몽


'너는 책에 무얼 바라니?'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책을 읽으며 단단해지길 바란다. 덜 흔들리고, 더 의젓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오만하지도, 순진하지도 않게 되길 바란다. 감정에 솔직해지길,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 거창하게는 지혜를 얻길 바라고 일상생활에서는 현명해지길 바란다.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알게 되길 바란다. -황보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공감이 필요하다. 남에게 헤아림 받고, 남을 헤아리는 경험. 인간의 보편성에 다가가고 동시에 인간의 개별성을 받아들이는 경험. 더 많이 공감받을수록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되고, 더 많이 공감할수록 타인을 긍정하게 된다. 타인에게 향했던 이해의 실마리가 돌고 돌아 나를 이해할 근거로 제시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모두고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뛰어난 책은 우리의 공감 능력을 증폭시켜 인간 모두를 연결한다. -황보름



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했던 고1 어느 날, 나보다 유식해 보이던 1반 반장이 유진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감동 깊게 읽었다고 했다. 유진 오닐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내가 무식하게 느껴져 그 책을 빌려 밤새워 읽었는데 감동은 커녕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유진오닐의 호텔에서 태어나서 호텔에서 죽는다는 탄식에 아! 호텔도 다 좋은 곳은 아니구나만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은 다급했다. 이 책도 읽어야 하고 저 책도 읽어야만 하는 다급한 마음이 생겼다. <데미안>을 읽은 후 벅찬 감동에 헤르만 헤세 책을 모두 찾아 읽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깊이 사고할 수 있는지에 감동받아 혼자 심각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이 사람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훗날 남편이 이문열을 좋아하고 대단하다고 말했을 때 기분이 나빴다. 이문열을 몰랐으면 저 인간을 안 만났을 수도 있었다는...


20,30대에는 성공한 사람의 에세이가 재미있었다. 술술 넘어갔다. 노력하고 나니 성공이라는 열매가 딱 기다리더라는 얘기에 내 인생도 노력하면 뭔가가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노력과 성공은 완전한 상관관계는 아니라는 것을 책이 아닌 삶이 가르쳐 주었다. 세상에는 빽과 줄이 존재했다. 그리하여 성공한 사람의 가벼운 에세이와는 작별을 고했다.


40대가 되자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책 읽을 시간은 부족했지만 내 몸 안의 수로가 고전을 읽게 했다. 적어도 백 년 이상 독자들에게 검증받은 책들이 고전이 아닌가? 젊은 작가보다 나이 든 작가의 작품들이 편했다. 어찌 되었든 세월이 준 풍파를 감당하고 뱉은 이야기라 가짜가 아닌 진짜 같았다. 갑자기 제주에 첫 집을 지으면서 사기를 당하고 그 와중에 상대가 소송을 걸면서 분노와 원망과 화에 휩싸였다.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엇인가를 읽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책들이 내 세포 하나하나를 위로했다. 소리 없이.


50대가 되자 많이 읽고자 다급했던 마음이 내려졌다. 내 것이 아닌 것은 놓을 줄도 아는 지혜가 다급함과 욕심을 줄였다. 좋은 책은 천천히 겸손하게 한줄한줄 읽어 나갔다. 너무 좋은 구절에서는 가슴이 꽉 차면서 사소하고 편안한 행복이 밀려왔다. 내 생각이랑 같구나. 내가 살아온 한 순간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구나! 그것이 책에서 받은 위로였다고 생각했는데 더 정확히 그것은 책과 저자가 준 공감이었다. 누군가 내 생각에 깊고 조용하고 울림 있게 맞장구를 쳐준 것이었다.


여전히 삶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한 친구를 곁에 두고 싶다. 그 친구는 내 말과 생각의 잘못된 부분을 기분 나쁘지 않게 소리치거나 다그치지 않고 시간을 주어 스스로 깨닫게 한다. 심지어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조용한 시간과 장소와 열린 마음만 요구한다. 이런 친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공유도 가능하다. 책은 나의 위로이며 조언자이며 지지자이다. 나를 깊게 위로하는 신의 선물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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