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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Nov 01. 2023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11

매일 읽겠습니다 - 황보름

내 생각에 책은 읽는 사람을 꽉 깨물고 콕콕 찔러대는 것만 읽어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자네가 편지에 쓴 것처럼 우리가 행복하려고 읽는 걸까? 맙소사, 설령 책이 한 권도 없다 해도 우리는 역시나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책이 필요한 거야.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 같고, 우리 자신보다도 더 끔찍이 사랑했던 그 어떤 사람의 죽음 같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뚝 떨어져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 필요하지. - 카프카가 친구인 오스카 폴라크에게 쓴 편지




자아를 깊이 파고들어 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양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땅 밑으로 들어가서 나를 보는 것, 경계 너머로 나가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것 이런 건 가끔씩 해야만 한다. 카프카처럼 읽는 사람을 콱 깨물고 머리를 한 대 치는 책도 가끔씩 읽어야 한다. 매 순간 삶의 정수에 들어가 고통과 침묵 속에 진지하고 치열하게 본질을 알아가는 것은 부담스럽고 힘들다. 특히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러다가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나도 모르는 내가 되어 주변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 분명하다. 나는 가끔씩만 진지하고 싶다.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은 즐거운 순간이 많아야 한다. 가벼운 농담과 웃음으로 행복해지는 순간이 더 많아야 한다. 햇빛 찬란한 시월의 가을 낮에 나는 혼자 있어도 충만하고 행복하고 싶다. 책의 도끼가 내 머리를 깨지 않아도 요즘 같은 계절은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책은 가끔 나에게 너무나 과한 것을 요구한다. 한 순간도 생의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강요한다. 그것을 따라 하다가는 큰일 날 것 같다. 물론 혼자 있는 밤과 비 오는 오후에 책은 나의 가장 편안한 친구이다. 이른 오전에도 소중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그 친구가 매번 내가 진지하기를 바란다면 나는 보조를 맞추느라 너무 힘들 것이다. 따라서 친구가 나를 잘 맞추도록 선택은 내가 한다. 즉, 내가 갑인 것이다.


여러 작가들이 독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옥같은 말을 남겼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 - 김경욱, 위험한 독서


나 자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나와 나 자신은 대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계속 책을 읽어 왔고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해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을 새로 일고 그때마다 감동을 글로 남기면 그것은 사실상 우리 자신들의 자서전을 기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버지니아 울프


내게 독서란 단순히 작가의 생각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온 세상을 여행하는 행위다. - 앙드레 지드


"'나는 그 책을 밤새도록 읽었다'라든가 '나는 이 책을 들자마자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는 경험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인생은, 특히나 청춘은 그렇게 응축된 몇 개의 경험만을 나열할 수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장정일, 이스트를 넣은 빵


물론 이 분들의 말씀을 존중하고 상당 부분 동의한다. 십 대에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20대에 나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이해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할 것이란 확신을 품었다. 나도 그 남자를 영혼으로 이해할 것이며 그 이후 쭉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동화의 엔딩이 내 것이라 무작정, 어떤 변수도 생각하지 않고 믿었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으니 영혼의 짝을 고르는 일에 절대 실수할리가 없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실패했다, 그것도 완벽하게. 물론 남편도 생각이 있겠지만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도대체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살면서 분석했다. 첫 번째는 책의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했던 것, 즉 나의 역량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과대평가했던 것이다. 이것은 상대의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어느 정도 고난은 살면서 조용히 현명하고 슬기롭게 잘 극복할 줄 알았다. 아니다, 나는 고난에 아주 예민하고 취약한 사람이었다. 책의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한 잘못은 철없는 나에게 있었다. 주인공은 아무나가 아니어서 주인공이다. 그 인물과 나를 착각하면 절대 안 된다.


두 번째는 상대 배역의 중요성도 간과했다. 그놈이 그놈이 아니었던 것이다. 워낙 주인공에만 몰두하여 책을 읽었던 탓에 그 주변 인물의 분석을 간과했다. 주변 인물과 역시나 중요한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배경의 중요성을 짧은 독서 경력으로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이로써 나는 제대로 된 독서의 중요성을 경험을 통해 이제야 대충 깨달았다. 세상에는 독서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경험이라는 실제가 존재한다. 이론과 실제가 합쳐진 것이 삶이리라. 아뿔싸! 알고 나니 오십 대이다. 바꿀 수 없다. 정이라는 한국인의 아름다운 정서로 서로를 두리뭉실 이해할 수밖에. 물론 남편도 할 말이 있겠지만 글은 쓰는 것은 당연히 저자이므로, 이 글의 저자인 나는 그의 의견을 게재할 공간과 의도가 전혀 없다. 내 글의 목적은 쓰는 것으로 나만 치유하는 아주 효율적인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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