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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Dec 19. 2023

나잇값 3 - 친절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입을 닫기

월든,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

내가 숲 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삶이란 그처럼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고, 도저히 불가피하기 전에는 체념을 익힐 생각도 없었다.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모든 정수를 뽑아내고 싶었고, 강인하고 엄격하게 삶으로써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 버리고 싶었다.




유년시절 고맙고 다정하게 대해준 어른에 대한 기억은 평생토록 지속된다. 나에게는 큰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그분들의 딸들인 사촌언니 두 명이 그렇다. 아버지에게는 세명의 누나가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국민학교에서 돌아오니 큰누나가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마문을 열고 자꾸만 집에 가라는 누나의 말을 듣지 않고 엄마처럼 다정했던 가마 탄 큰누나를 따라 매형의 집까지 갔다고 한다. 사돈댁에서는 어린 사돈에게 맛있는 한상을  차려주고 집에 돌려보냈다고 한다. 소설책에나 나올법한 그 다정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나는 고모가 좋았다. 고모는 선한 사람이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가진 것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 자체를 몰랐다. 사촌언니들도 그랬다. 세월이 지나 각자의 삶을 사느라 이제는 건너 건너 소식을 듣지만 고모와 언니들의 그 선함이 갈수록 고맙고 존경스럽다. 어릴 적 방학 때마다 놀러 가서 한 달을 눌러살던 고모집은 반찬이 더 맛있지만 이상하게 눈치가 보이는 큰엄마의 집보다 훨씬 편했다.


따뜻함과 선함을 알려준 고모와 사촌언니들이 항상 행복하길 염원한다. 좋은 기와 마음이 흘러나와 그들에게 흘러가길, 나 또한 보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언니들은 뭔가 충고나 조언을 가장한 마음 아픈 말을 하지 않았다. 남을 일부러 헐뜯거나 신경 쓰는 말 따위도 하지 않았다. 다정했다. 얼핏 보면 욕심도 없고 속이기 쉽게 보이지만 욕심이 없기 때문에 언니들은 속을 일이 없을 것이다. 선한 사람이 잘되는 세상이길 기원하며 언니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행복하길 기원한다.


나의 아버지도 사람을 항상 다정하게 대했다. 본인의 감정에 따라 변덕스럽게 사람을 대한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예의는 나로 인해 타인이 불필요한 오해와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가 쓸데없이 아버지의 기분을 살피게 하는 언행을 하지 않으셨다. 나이가 들면 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 기분에 따라 내 눈치를 보게 되면서 아버지와 같은 진정한 예의를 지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반성하지만 그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 않은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며 쓸데없는 강요와 폭언을 했다. 개뿔, 그냥 감정조절이 안되었을 뿐이었다. 가시 돋친 말에서 나오는 살기와 독기는 그냥 느껴진다. 그냥 입을 닫을 걸, 온몸으로 못마땅함을 발사하면서 말까지 독을 보태 타인도 나도 상처 입게 한 지난날이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충분히 무식하고 추했다. 큰고모처럼 언니들처럼 아버지처럼 남의 인생에 원하지도 않는 조언을 하지 말자. 묵묵히 응원해 주도록 이를 꽉 깨물고 입을 닫자. 아름답고 부드러운 톤이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하자. 나이가 들어 세상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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