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천히바람 Dec 16. 2023

나잇값 2 - 사랑의 정의

신데렐라가 나를 망쳤다.

사랑은 신의 완전성을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 Robert A. Johnson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등 동화 속의 사랑은 그녀들의 고통을 끝내줄 왕자가 사전예고도 없이 우연히 그들을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심지어 왕자는 마마보이도 아니다. 완전무결한데 왕자가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까지 보여주며 조금 험난한 결혼과정을 겪는다. 그렇지만 결혼 이후로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 동화 속의 왕자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 외모, 성품도 완벽한데 배우자까지 사랑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다. 이런 동화를 읽으면서 자란 여자들은 언젠가 나타날 왕자님을 무의식적으로 기다린다. 하지만 여자들은 본인의 외모가 동화 속 여주인공에 현저히 못 미치는 것을 깨닫고 할 수 없이 조건을 양보한다. 그리하여 왕자의 친구, 친척, 신하, 지인까지로 상대의 범위를 낮춘다.


그러나 양보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선택한 지위, 경제력, 외모, 성품이 모두 모자란 그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왕자가 공주를 사랑하는 만큼이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신께도 요구할 수 없는 완전성과 절대성을 요구한다. 정여울 작가는 <마음의 서재>에서 '사랑의 완전성'과 '상대방의 완전성'에 대한 기대를 철회하는 것, 그리고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을 비교하는 작업을 끝장내는 것이 타자를 타자인 채로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이런 어려운 말을 쉽게 바꾸면 '정신 차리자'이다. 내가 고른 사람은 왕자가 아니고 나 또한 미모의 공주가 아니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깨닫자는 것이다.


예전에 신데렐라 스토리류의 동화책을 읽히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읽었다. 이제야 몹시 공감한다. 우연히 누군가가 나타나서 내 인생을 행복과 안정의 길로 이유와 조건 없이 이끌어 준다는 것은 헛되고 헛되다. 차라리 드라마가 훨씬 현실적이다. 사랑은 동화 속에서 완전한 왕자가 나를 보고 첫눈에 헤까닥 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비이성적 착각을 바탕으로 정의되었다. 결혼해 보니 왕자의 지인조차도 아닌 그 남자는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많은데도 자기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철부지 어른이었다. 이렇게나 내 조건을 양보했는데도 현실은 눈을 더 낮춰야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살아보니 역시나였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읽는 한 이러한 비극은 막을 수 없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에게는 버거운 완전성을 바랐나 보다. 그러니 눈에 찰리가 있었겠나. 보통만 해도 괜찮을 사람을 신데렐라의 남편과 비교하니 온통 허점투성이에 뭔가 모자랐고 그런 그를 고른 나를 탓했으나 사실은 동화책이 잘못한 것이었다. 이건 농담이 아닌 진지한 사유의 결과이다.


오십이 넘어 이 심오한 사랑의 정의를 몸으로 부딪혀가며 주변인들을 면밀히 종적관찰을 하고 드디어 깨달았다. 사랑은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며 동화책을 읽을 때는 주인공 주변인물들 요리사, 마부, 계모, 의붓언니를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했었다. 나를 공주에 대입하고 그를 왕자에 대입한 것은 중대한 오류였다. 이제 계모의 처세술과 드레스가 맞지 않는 살찐 의붓언니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왕자가 본인을 보아주기를 갈망하면서 구두에 맞춘 아픈 발을 참았을 것이다. 파티를 살피고 어느 순간 왕자를 포기하고 적당한 다른 타깃을 찾느라 바빴을 것이다. 이미 왕자의 옆자리는 본인들이 될 수 없음을 간파하고 대안을 찾았을 것이다.


보통 끝무렵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사랑한다고 적어야겠지만 이제 사랑과 정과 의리는 한 단어가 되었다. 우리는 의리로 똘똘 뭉쳐 하루종일 나는 구박해도 어디서 남이 구박하면 그래도 화가 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분명하게 말하면 자고 깬 남편을 보면 설레거나 따뜻한 한 마디에 마음이 풀리는 그런 이성적인 사랑은 절대 아니다. 누가 데려간다면 짐을 이쁘게 싸서 응원하며 보내줄 수도 있다. 아프지 말고 빨리빨리 씻고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제 할 일을 똑바로 하는 건전한 대한민국 구성원으로서 몹시 격하게 응원하는 바람직한  부부사이이다. 결론은 신데렐라스토리가 멀쩡한 여자들을 망쳤다는 것이다. 현대적이며 시대적 변화에 맞춰 제목을 신데렐라 계모와 딸들의 이야기로 바꿔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