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천히바람 Nov 11. 2023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13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김영갑

"손바닥만한 창으로

내다 본 세상은

기적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영갑은 2005년 그가 손수 만든 두모악 갤러리에서 고이 잠들었고,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산굼부리로 가는 길에 조그만 카페가 하나 있다. 지인의 추천을 받고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를 처량한 날씨에 도착했더니 세상에나 내가 생각한 진정한 북카페가 있었다. 화려한 장식 없이도 주인이 읽었던 그 책의 질과 양으로 그곳은 내가 꿈꾸고 원했던 편안하면서도 외로운, 즉 '외로움과 평화'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뽑아 든 책이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이다.


북카페란 곳에서 책을 그렇게 신중하게 읽기는 처음이었다. 김영갑 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과 답답함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우리를 포함해 손님은 두 팀이었다. 한 무리의 여자 손님들 테이블에선 돈 얘기가 오갔다. 그 와중에 창을 바라보고 책을 읽던 나는 주책맞게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립다.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 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등에 업은 아기를 삼 면이나 찾아다녔다는 노파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 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이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날숨과 들숨이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이다.


눈보라 치는 한겨울에는 전기장판이 있어도 전기 요금이 늘 마음에 걸려 한밤중에만 사용한다. 전화요금을 제때 내지 못해 정기적으로 통화 정지가 되고, 답답함을 참지 못하면 전화국에 사정을 한다.

궁핍함에 길들여진 탓에, 바쁘고 번잡한 도회지에선 누릴 수 없는 시간과 자유만큼은 넉넉하다. 그리고 그 덕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세상의 밝은 부분과 아름다움만을 보고, 눈치를 보지도 싫은 소리를 등지도 않는다. 나의 궁색한 생활은 삶의 긍정적인 부분만을 느끼게 하고, 사람들과 아귀다툼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하루를 선물한다.


마을 주민들은 배상을 받았지만, 마을 주민이면서도 나는 라면 박스 하나조차 받지 못했다. 면사무소를 찾아갔지만 담당자는 피식 웃으며 이장에게 가보라고 떠넘겼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매달려 영혼을 바치는 사람들, 주위의 냉대와 비웃음에도 우직하게 한 길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답답하다. 그런 일은 팔자 좋은 사람이나 정신 나간 사람들이 하는 짓으로 여기는 게 세상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고 삶을 판단한다. 다른 생각으로, 다른 이상을 위해 살아가며, 다른 것을 꿈꾼다.



나는 공감할 수 없다. 너무 추워 전기장판을 마음대로 켤 수도 없었고, 끼니 걱정, 필름 걱정했던 시절을 아프다는 이유만으로는  그리워할 수는 없다. 루게릭 병도 굶고 추운 곳에서 사진 작업을 해서 생긴 것 같았다. 세상의 밝은 부분만을 보고 싶지만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의 한 차원 다른 순수함이 서글펐다. 물난리에 집이 잠겨  피해를 조사하는 담당자에게 버려진 필름과 전시회를 위해 구입한 인화지 얘기를 열심히 했다. 일말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던 사람들 앞에서 모자라게 보였을 그가 안타까워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읽었다. 폐결핵에 걸리고 결국은 루게릭병으로 수저를 드는 것도 음식을 삼키는 것도 불가능해지며 몸의 근육이 내 것이 아닌 것이 되어 갈 때 조차도 사람보다 사진을 더 소중이 여겼다. 도대체 왜 그런 수도자 같은 삶을 살게 되었을까?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가 스스로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노인들의 얼굴은 젊은 날 고왔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주름투성이다. 욕망과 열정, 질투, 분노... 인간의 극한 감정들이 모두 사라진 기력 없는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일과가 되었다.


어머니의 삶이 행복하길 간절히 소망하며 자라온 나는 한 여자의 불행을 원치 않는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러질 못했다.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나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일곱 남매 중 나 하나가 문제라고 어머니는 늘 걱정했다. 초등학교 시절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어머니는 큰 기대를 가졌었다. 나의 미래를 위해 점쟁이를 만나고 와서는 액막이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미신이라고, 어머니는 배우지 못해서 그런다고 난리를 쳐서 어머니 속을 뒤집어놓았다.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 그런 어머니의 끈기에 나는 더 화가 났다.  아버지의 매질 속에서도 한 번도 짐 싸들고 대문 밖을 나서지 않은 그 인내심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무조건 참고 기다리는 어머니가 미웠다.

아버지는 나이 쉰이 넘어 대수술을 받았다. 알코올 중독의 후유증오 오장육부 어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합병증으로 사경을 헤매다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그 후 아버지는 술 담배를 끊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남편이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그날이 오기까지 그토록 오랜 세월을 목석처럼 참고 견딘 이가 내 어머니였다.

비 오는 날, 할머니와 마주 앉아 얘기를 하다 보면 그 얼굴에 자꾸 어머니 모습이 겹쳐졌다.


어머니와 헤어지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어머니! 골목 외등 밑에 기대어 쌈지를 풀어보았다. 돈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불행을 진심으로 슬퍼했다. 무엇이든 아들을 도와주려고 나섰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런 마음이 내게는 부담이 되고 불편했다. 아버지도 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무엇을 도와야 할지도 몰랐다.


죽고 나서야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는 예술가들이 부럽지 않다. 물론 고생 끝에 낙이 오고 해피엔딩을 이루는 스토리가 더 감동적이지만 그런 생고생을 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 철 모를 때 한 번쯤은 이 세상의 고난과 역경을 드라마틱하게 이겨내고 해피엔딩을 기대했지만 살면 살수록 순간의 평안함, 소소한 만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 이미 자연스럽게 내 삶에 끼어들어 인생은 그 자체로 몹시 복잡하고 내 인내와 한계는 바닥으로 향해 있다. 절대로 더한 역경과 고생을 바라지 않는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도 싫다. 나는 진행형이며 SMALL 행복을 자주 원한다. 등 따시고 배 부르고 커피 한잔의 여유와 읽을 책과 친한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민에 함께 할 마음과 시간이 여유로운 순간이면 행복하다. 몹시도 따뜻하고 순수했지만 결핍이 많았던 그의 삶이 슬퍼 눈물이 났다. 영혼이 맑은 사람을 거두고 치유하기에 제주의 풀과 산과 바람과 모든 자연이 함께 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러지 못했다. 자연은 위대하고  너무나 고요하고 크나큰 위로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다정한 한 마디와 따뜻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공간이 작고 적어 늘 충만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