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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Nov 24. 2023

나잇값 1 - 품위 있게 늙기

아킬레스 파열 2023. 11

내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할지 깊이 고민했다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하나의 이상을 찾는다면,

기꺼이 목숨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두를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나무에 기덴 채

외로이 죽어 가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체 게바라



 

아킬레스가 붓고 아픈 지 오래되었다. 연례행사처럼 아팠지만 이렇게 오래 간 적은 없다. 수개월 넘게 절뚝거리다 풀리다를 반복하였다. 서귀포에서 부산에 온 김에 병원순례를 했다.  A정형외과를 갔다. 기계도 건물도 의료진도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아킬레스가 밧줄이라면 염증으로 나풀나풀 밧줄이 풀어졌단다. 그러려니 했는데 다음 날 저녁장을 보다  발을 디뎠는데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강한 통증이 왔다. 뭔가 이상해서 바로 A병원에 갔더니 근막이 찢어졌다고 깁스를 권했다. 늦은 시간이라 우선 프롤로 주사만 맞고 집에 왔다.


다음 날 족부 전문병원을 검색해 가장 가까운 B병원에 갔다. 역시 새 건물에 처음 보는 설비였다. 어제 찍은 초음파 cd와 X-Ray를 보여주었더니 전부 다시 찍으란다. 건물 올리려면 뭐 그렇지 하고 이해했다. 갑자기 아킬레스가 70프로 손상되었다고 수술을 하라고 했다. 이후 두 달 동안 땅에 발을 디디면 안 된다고 했다. 멘탈 붕괴. 조금 더 전문적인 치료를 기대하고 왔다가 낭패다. 수술과  아킬레스가 전부 끊어질 경우를 얘기하니 공포스러웠다. 그 와중에 욱신거리는 발목을 부여잡고 다른 환자에게 의사의 과잉진료를 물었다. 만약 수술을 해도 제주에서 한다고 하니 의사가 복잡한 수술이라며 본인은 자신 있다고 했다.


우선 집에 와서 울었다. 제주 우리 동네에 마땅한 정형외과가 없어 한의원만 다니며 소염진통제도 안 먹은 게 후회스럽고 아프니까 전부 내 탓 아닌 남 탓이 밀려왔다. 밥부터 먹고 생각을 정리했다. B병원에서 들은 말이 이상했다. 아킬레스가 70프로 끊어졌는데 나름 잘 걷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새 건물에 설비에 뭐 그런 것도 감안이 되었다.


A병원에 전화를 했다. 의사 선생님한테 B병원 다녀온 얘기를 솔직히 했다. 수술 할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결론은 객관적으로 제3의 의사가 보자고 해서 결국 C병원으로 왔다. 입원을 하고 여러 검사를 했다. 아킬레스 상태가 안 좋은 건 맞으나 역시 수술은 아니라고 했다.


아픈 것도 힘든데 어리숙해 보여서 안 해도 될 수술을 했으면... 세상 살기 내 마음 같지 않구나 씁쓸했다. 나만 잘하고 선해야 될  세상이 아니구나. 속인 사람이 나쁜데 세상은 속은 사람을 같이 나무란다. 병에 무지해서 편히 알아볼 곳이 없어 이런 일을 당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아킬레스가 끊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 도움을 받자. 긍정모드로 병을 알렸다. 역시 대한민국 주부들의 정보력은 짱이다. 전문적이지 않지만 맞는 말이 쏟아졌다. 의사이름만 가르쳐줬더니 동네언니들이  다 알아서 조회를 해주었다. 헐, 세상에나 수술을 잘 권하는 사람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병원비를 계산하고 퇴원하면서 생로병사란 말이 자꾸 떠올랐다. 늙고 병들고 죽을 거면 좀 더 품위 있게 나잇값 하면서 로병사를 할 연습을 해야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 밖에. 에라 모르겠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할 방법은 없으니 아픔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찾고 더 즐겁게 놀거리를 찾아야겠다. 아마 나도 모르게 책을 통해 내공이 쌓였겠지. 그래도 나 자신의 로병사를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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